우리 교단 해외선교가 40년 동안 이어지며 선교의 열매를 맺어온 것은 많은 선교사들이 흘린 눈물과 땀, 목숨을 내건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단 선교 40년의 역사에는 선교지에서 자녀를 잃은 선교사 부부의 고난이 담겨있고, 독침을 맞고도 다시 선교지로 향했던 순교정신, 선교지에서 강도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선교사들의 헌신이 그대로 녹아져 있다.

성결인 선교사들의 남다른 헌신과 희생은 교단의 선교 초기부터 이어져왔다.

1995년 우즈베키스탄 김동완 선교사는 여권을 몰수당하고 출국 금지까지 당한 상태로 어려움을 겪다가 병을 얻어 선교지에서 순직했다. 선교사로 헌신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풍토병으로 투병하면서도 선교에 매진했던 볼리비아 김봉래 선교사도 같은 해 암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는 순교지에 묻혔다.

 1997년에는 네팔에서 이중환 선교사 가정이 쌍둥이 어린 남매를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었으며, 1998년 러시아 우태복 선교사는 강도의 칼에 맞아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했다.

풍토병으로 목숨 잃고
어린 자식 가슴에 묻고도
멈추지 않는 선교 헌신
선교 40년 꽃 피워

같은 해 중국 송시영 선교사는 간암으로 심양에서 순직했다. 선교사들의 계속되는 순직과 고통의 소식이 전해졌지만 교단 선교사로 헌신하는 이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세월이 흘렀지만 선교사들의 수난은 계속됐다. 2007년에는 케냐 주진국 선교사가 말라리아 발병으로 하늘의 품에 안겼다. 주 선교사는 18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려 계속 투병하고 호전하기를 반복하면서도 선교지에서 헌신하다 결국 말라리아로 주님의 곁으로 떠나갔다.

중국 강호빈 선교사는 2011년 독침 테러를 당해 죽을 경험을 한 후에도 사역을 계속하다가 이듬해 북한 테러가 의심되는 사고로 소천했다. 독침 테러를 당하고도 중국으로 다시 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참변이지만 ‘선교’와 목숨을 맞바꾼 것이다.

지난해에는 인도 홍은옥 선교사가 흑색종으로 소천하는 등 낯설은 선교지에서 사역하다가 병을 앓거나 투병하는 선교사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오랜 선교지 사역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병을 앓다가 소천한 은퇴 선교사들의 소식도 계속되고 있다.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고, 센터를 짓고,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하는 모든 사역의 기초에는 이 같은 선교사들의 끝없는 희생과 헌신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