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검지를 꼿꼿이 세워 하늘을 가리키며 무엇인가 강한 의지를 보여주려는 동상이 있다. 옷고름 대신 단추로 여미는 개량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왼손엔 성경일 듯한 책 한 권을 껴안고 서 있는 고당 선생의 동상은 공원의 최고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언제나 산책코스로 돌아드는 공원 길목에서 마주치는 그 동상 앞에만 오면 나는 왜 작아지려 하는지 모른다. 저 동상을 세운 이들이 그 안에 담으려 했던 혼이 무엇이었기에 나는 조각품에 지나지 않는 청동제품에 주눅이 들어야만 하는지를 모른다. 이 공원을 노닐며 저 동상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심정은 아니었을 터인데 나는 홀로 미욱하기 짝이 없었다.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을 기념하고 잊지 않기 위하여 그의 형상을 본뜬 동상을 만든다. 요즘은 정치적인 목적 달성을 위하여 악용되는 경우가 허다하여 본래의 깊은 뜻이 상실되었지만, 그게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나는 저분의 동상을 마주하면 그 순수한 뜻을 알 수 있겠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동상을 가장 잘 만든다는 북한은 그것을 세워 놓고 그 우상을 숭배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정치를 하고 있다. 생명 없는 죽은 동상에 절하며 경배를 올려야 하는 모습은 미신을 섬기던 구시대의 후진적 행태라 하겠다. 내가 한복차림의 초라한 동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집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가 반듯하게 치켜세운 검지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19세기 말엽 동학농민운동이 한참이던 혼란한 시절에 태어나 한국전쟁 중에 돌아가신 고인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의 슬픈 운명을 목숨 걸고 받아들였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남에는 미국과 협조하는 이승만 정부가 들어섰고, 북에는 소련에 협력하는 김일성 정권이 있었으니 남의 김구 씨나 북의 조만식 씨는 여물통 속의 도토리 신세였다는 역사의 기록이다. “조국과 민족은 하나!”라는 부르짖음은 권력자들에게 먹혀들지 않는 넋두리 같은 소리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에도 조국은 하나라는 논리로 순수하거나 그렇지 않은 음모 수준의 외침과 주장을 바라본다. 굳어진 패권과 의식의 패륜은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일진대 돌파할 수 있는 틈이 있기는 하려는지, 나는 저 어른의 꼿꼿이 세운 여린 손가락 검지에서 뿜는 힘이 턱없이 모자란다고 느낀다.
일제 강점기에 그는 일본의 명문 학교에 다녔다. 개명한 의식으로 민족 독립을 위하여 헌신한 선생은 간디의 무저항 민족주의에 감동한다. 물산장려회를 만들어 국산품 장려운동을 벌인다. 교육과 언론에 몸담으며 민족 개혁과 창달에 헌신한다. 옥고를 치르며 조국을 위한 열정을 불살랐다. 해방되자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조선민주당을 만들어 공산주의에 반대했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남으로 가라는 종용을 물리치고 평양에 남아서 죽음을 맞이한다.

동상의 주인공, 고당 조만식 선생은‘무주랑 빗자루’란 별명이 말하듯 작은 키, 담대한 용기, 낭랑한 음성으로 열띤 웅변조 연설을 할 때는 모두가 감동하고 마는 민족지도자였다. 남의 김구 선생처럼 북의 조만식 선생도 칼자루를 잡은 권력자에게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어느 날, 공원 동상 앞 잔디밭에 어린 학생 열 명 남짓 모여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운동권에 속한 학생들의 외침 그대로 고인을 추모하는 모임을 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순수한 열정으로 조국을 걱정하며 염려하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선생과 같이 조국에 바친 비운의 헌신과 충성을 누가 권장할 것인가. 추악한 권력은 교묘한 이념의 탈과 수단을 감추고 있다는 선생이 마지막으로 깨달았을 교훈을 우리는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닐까.

요즘 젊은이들은 검지로 스마트폰 작동에만 여념이 없다. 치켜든 손끝이 지향하는 목표에는 관심조차 없으니 어찌하랴. 내 조국은 지금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조만식 선생의 동상 모습과 같이 꼿꼿한 검지를 뽑아 들고 나도 ‘하나’가 되라고 소리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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