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달 자세와 제스처

손동식 목사
작은 여우가 포도원을 허물 듯, 작고 사소한 것들이 설교를 허문다. 따라서 지혜로운 설교자는 사소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설교에서 사소해 보이지만 한 번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전달의 자세와 제스처이다.

설교 전달의 자세와 제스처는 안타깝게도 설교학 책에서도 주의깊게 다루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의 생각에 설교의 왕자, 스펄전의 조언이 설교자에게 유익한 이유 중 한 가지는 그 구체성 때문이다. 스펄전은 설교자의 몸짓 역시 설교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며 가벼이 여기거나 지나치지 않는다.

또한 설교의 특성상 좀처럼 가르치거나 설명하기 힘든 부분조차도 설교의 왕자답게 세세하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친절하게 조언해 준다. 그렇다면 강단에서 설교자의 자세와 제스처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에 관한 첫 번째 원칙은 몸짓이 절대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틴 루터가 주먹으로 강단을 자주 내려쳤다면, 존 녹스는 격렬한 목소리로 말씀을 선포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몸짓과 스타일은 많은 부분 그들이 처했던 시대적 공격성과 도전에 기인한다.

설교자는 항상 열정적이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격렬하고 과도한 몸짓을 취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러셀(Russell)은 이 미묘한 차이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열정은 결코 난폭함과 고함으로 전락하는 법이 없다. 참된 열정은 영감에서 오는 힘이지, 결코 광란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강렬하게 고조된 상태에서도 항상 씩씩하고 고상함을 유지하며 저속함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고함치는 목소리나 쉰소리의 상스러움, 비명소리나 스스로의 황홀경 속에서 내는 히스테리성 목소리, 위협하는 태도나 주먹을 두드리는 등의 과도한 감정 표현으로 전락하는 법이 없다.”

비록 적절한 몸짓의 정도에 관해서는 민족이나 개인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몸짓이 회중에게 두드러진 주목을 받는다면 그것은 이미 자연스러운 몸짓을 넘어선 지나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성적으로 몸짓이 크고 열정적인 사람은 그 에너지를 강단에서 다소 억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설교자는 손을 조금 적게 흔들고 전반적으로 조용조용 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둘째, 몸짓과 제스처는 풍부하면서도 적절해야 한다. 몸짓과 제스처는 언어만큼 많은 것을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몸짓과 제스처는 언어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을 더욱 분명하고 강하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화난 표정으로 문을 열고 그 문을 가리키는 행동은 “문 밖으로 나가시오”라는 말보다 더 강한 의미를 함의하며, 조용히 해달라는 요청을 할 때는 가만히 손가락을 입술에 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반면 설교자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그가 전하는 내용과 정반대의 의미를 내포하는 적절치 못한 제스처이다. 예를 들어, 집중을 강조하며 팔을 넓게 벌리는 것이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이야기하며 위협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는 것과 같은 몸짓이다.

스펄전은 설교에서 손의 제스처가 설교의 전달에 미치는 역할에 관해 이렇게 역설한다. “그 어색한 손을 일단 굴복시켜 놓으면 그것은 우리의 최고 동역자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혀 뿐 아니라 손으로도 의미와 뜻을 전달할 수 있다. 손은 우리의 말에 매력을 더하는 소리 없는 음악이다.”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라도’ 복음을 전하고 했던 이성봉 목사님처럼, 설교자는 언어 뿐 아니라 몸짓을 비롯하여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진력할 것이다. 복음은 그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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