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교회 순교 재조명 사업 활기

고 김동훈 전도사(1899~1928)는 조치원교회 담임목회 시절 자신을 유혹하는 여인을 물리치고 그 여인의 무고로 그 남편과 불량배들로부터 무참히 구타를 당해 결국 1928년 10월 16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김 전도사는 한동안 교단 안에서 ‘순절자’로 분류되었으나 총회 순교자·순직자·수난자 심사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마침내 1991년 교단 최초의 순교자로 등극했다. 김동훈 전도사의 순교신앙이 최근 교단과 교계에서 다시 주목 받으면서 그의 순교신앙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젊은 여인의 유혹 뿌리쳐
고 김동훈 전도사의 순교는 성경 창세기의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감옥에 갇힌 이야기에 종종 비견된다. 기도의 사람이었던 김 전도사는 1928년 조치원교회 2대 담임으로 부임해 평소 습관대로 기도에 전념했다. 하루에 6∼7시간을 기도했고 새벽기도뿐 아니라 밤에 혼자 자정까지 기도했으며 어떤 때는 산에 가서 1주일씩 금식기도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순교자 김동훈 전도사
어느 날 조치원 일대에 행실이 좋지 않다고 소문이 자자한 18세의 여인이 밤중에 길을 가던 김 전도사를 유혹했으나 김 전도사는 이를 뿌리치고 교회에 와서 기도했다. 이 여인은 교회까지 찾아와 김 전도사에게 자기가 너무 짝사랑하니 소원을 한번만 들어달라고 재차 유혹했다. 이에 여인을 꾸짖고 달래던 김 전도사는 여인이 너무 막무가내로 나오자 “돌아가지 않으면 당신의 남편에게 고발하겠다”고 말했고 이에 여인이 놀라서 달아났다.

그러나 이 여인은 보디발의 아내처럼 남편에게 김 전도사가 자신을 겁탈하려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조치원 일대에서 소문난 깡패였던 남편은 아내의 말을 믿고 불량배들을 동원해 집으로 돌아가던 김 전도사를 폭행했다. 피를 흘리며 길에 쓰러져 있던 김 전도사는 아내 김소순 전도사에게 발견되어 즉시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세브란스 병원에 이송된 지 9일 만에 소천했다. 당시 그의 나이 30세, 조치원교회에 부임한지 7개월 만이었다.  

김 전도사는 죽음을 맞으면서도 절대 소송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해를 입힌 자들을 용서했다. 그의 신앙은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활천은 김 전도사의 죽음을 조치원 지역 교계의 연합을 이루고 신자와 불신자를 하나로 묶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해자들도 그의 사랑에 감복해 모두 교회에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특히 그의 순교신앙은 조치원교회에 큰 영향을 끼쳐 성도들에게 큰 자긍심으로 남아있다. 

그의 아내 김소순 전도사도 남편의 뒤를 이어 장충단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으며, 외손자 김창호 장로(장충단교회 명예)를 비롯해 그의 후손 25명이 순교자의 피를 이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순교신앙 새롭게 조명
조치원교회(최명덕 목사)는 고 김동훈 전도사의 순교신앙을 재조명하고자 지난해 5월 김동훈 전도사 흉상제막식을 가졌으며 교회 비전센터를 리모델링해 ‘김동훈홀’로 명명하는 등 활발한 기념사업에 나서고 있다. 김 전도사의 흉상은 외손자 김창호 명예장로가 제작비 전액을 지원해 제작, 조치원교회에 헌납한 것이다.  

조치원교회 김동훈 전도사 흉상
조치원교회는 최근 ‘김동훈 순절기’를 새롭게 펴냈다. 순절기에는 김동훈 전도사의 생애와 순교 당시의 이야기가 자세히 담겨 있다.

또 그의 아내 김소순 전도사의 삶과 사역이 소개되어 있으며 김동훈 전도사에 대한 연구 글도 여러 편 수록됐다. 부록에는 김 전도사와 순교신앙을 기리는 설교와 시, 조사, 추도문 등이 들어있으며 최명덕 목사의 발간사와 이종래 목사(경주중부교회)와 박순영 목사(장충단교회)의 축사, 김창호 명예장로의 유족인사 등을 실었다.

앞서 김 전도사의 순교이야기는 그의 소천 불과 두 달 만에 교단의 사부인 이명직 목사에 의해 1928년 12월 ‘김동훈 순절기’에 처음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의 한글표기의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져 이를 다시 현대어로 고쳐서 이번에 재 발행된 김동훈 순절기에 수록됐다.  

교계적으로도 김동훈 전도사의 순교신앙이 재조명 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최근 김동훈 전도사를 한국교회 순교자로 인정해 그의 이름을 등재했다. 김동훈 전도사가 교단뿐 아니라 교계적으로 공식적인 순교자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이다.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한국교회를 위해 순교한 신앙 선조들의 신앙과 정신을 기리고 한국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재단이 1989년 11월 개관한 곳이다. 1884년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이후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진 순교자는 26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600여 명의 명단이 순교자기념관에 헌정되어 있다.   

조치원교회 김동훈홀
김 전도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제작 중이다. CTS기독교TV는 조치원교회와 함께 최근 김 전도사의 순교신앙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섰다. 김 전도사와 관련한 기록을 토대로 그의 일대기와 순교당시의 이야기가 생생히 전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본 방송은 이르면 10월 달 방영 예정이다.         

얼마 전 창립된 세종시 YMCA는 순교자 김동훈을 기리는 운동을 범교단적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는 등 김 전도사는 교단을 초월해 세종지역을 대표하는 순교자가 되고 있다. 

총회 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신영춘 목사)도 지난 2014년 조치원교회를 총회가 인정하는 순교지로 추가한 바 있다. 역사편찬위는 또 순교성지 탐방 가이드 개정증보판에 조치원교회와 관련한 내용을 수록하기로 했다.

죽음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한 순교적 삶
순교자 김동훈 전도사는 함경도 북청 출신으로 18세가 되던 해에 북청지역 장로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온 이명직 목사의 설교를 듣고 크게 감동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했다.

김동훈 전도사의 성경책
그는 1920년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 성결교회의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여 복음전도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신학생들과 함께 저녁마다 모여 기도하고 주일저녁과 수요일 저녁에는 거리에서 사람을 모으고 전도해서 교회로 안내했다.

3년간 그는 성서학원에서 그의 생애가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하며 영적 연단의 과정을 거쳤다. 1921년 경성성서학원에서는 큰 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명직 목사가 주도한 이 부흥운동은 성서학원 재학생들이 새롭게 갱신하는 데 기여했다. 김동훈 전도사도 이 성서학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영적 성결을 체험하고 이것은 그의 생애를 새롭게 규정짓는 전환점이 되었다.

1923년 김동훈 전도사는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경주교회에서 사역을 하다 청년 김소순을 만나 가정을 꾸린다. 그는 10명이 나오던 개척교회인 경주교회를 불과 3년여 만에 성도 50여 명의 교회로 부흥시키는 목회적 성실함을 보여주었다.

이후 김동훈 전도사는 부흥하던 경주교회를 사임하고 성결교회의 특징인 전국을 순회하며 전도하는 지방전도대 활동을 시작했다. 성결교회 사역자로 본격적인 복음전파 사역에 헌신한 것이다. 교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전국적인 전도사역에 참여해 1년간 순회전도자로 활동하던 중 그는 조치원교회로 발령을 받게 된다.

1928년 3월 조치원교회에 부임해 담임교역자로 활동하던 그는 행실이 바르지 못한 한 여인의 무고로 그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 30세의 아까운 나이에 하늘의 품에 안겼다.

1975년 조치원교회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김동훈 순절기념관을 봉헌했으며 지난해 흉상 제작과 김동훈홀 개관 등으로 그의 신앙을 기리고 있다.

김동훈 전도사의 순교적 생애는 이제 교단을 넘어 교계적으로 목숨으로 신앙의 절개를 지킨 그리스도인의 순교적 표상이 되고 있다.  

이명직 목사는 저서 김동훈 순절기에서 ‘나이로 보아 애석하나 형제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았다. 아벨이 죽었으나 말하는 것과 같이 형제의 죽음은 그 자체로 힘있는 설교가 되었다. 우리는 형제의 그 신앙, 그 정조, 그 승리, 그 사랑을 만대에 영원토록 기억할 것이다’고 김동훈 전도사의 순교를 애석해했다.

김문기 교수(평택대 교회사)는 “오늘 상처투성이, 부패와 악이 만연된 이 사회에 나라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김동훈 전도사와 같은 신앙과 순교적 삶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고 말하나 죽지 않고 아직도 살겠다고 꿈틀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김동훈 전도사는 죽음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한 순교자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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