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유종(有始有終), 시작이 있으면 마침도 있는 법"

지난 6년간 서울신학대학교를 이끌어 온 유석성 총장이 오는 9월 1일 퇴임한다.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취임한 유 총장은 학교의 이름을 널리 알린 ‘개교 100주년 기념 인문학 강좌’를 비롯해 수많은 도전으로 학교를 국내 최고·최상의 신학대로 발전시켰다. 이임을 앞둔 유석성 총장과 만나 지난 6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 6년간 총장 활동을 평가한다면?
지난 6년간 서울신학대학교는 국내 주요 신학대학들 중 ‘최고’와 ‘최상’의 학교로 부상했다. 입학 경쟁률 부문에서 ‘최고’가 됐고, 대학평가에 있어서도 우리 학교는 ‘최상’ 그룹에 해당한다. 서울신대의 입학 경쟁률은 7대 1에 달했다. 개교 105년 역사상 최고의 경쟁률이다.

교육에 있어 ‘혁명적’이라 말할 정도의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 그리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업그레이드 됐고, 여러 면이 종합적으로 상승했다.

- 무엇에 가장 치중했나?
먼저 3대 목표를 세웠다. ‘창조적 기독교 지도자 양성’과 ‘지성과 영성, 덕성이 조화된 교육’, ‘21세기가 요구하는 기독교 명문대학’ 등이다. 이를 위해 4대 실천전략을 추진했다. ‘교육의 내실화’와 ‘연구의 활성화’, ‘행정의 효율화’와 ‘대학 기반시설 확충’ 등인데, 지나고 보니 거의 다 이룬 것 같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를 뜻하는 안·감·미 예절 운동도 기억에 남는다. ‘예절은 빨리 나타나고, 실력은 천천히 발휘된다’고, 예절이 나쁘면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박탈당할 수 있어 예절운동을 벌였다.

그에 못지 않게 강조했던 것이 ‘신앙의 생활화’였다. 신학생들이 기도하고, 성경 읽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 3분 이상 기도하자, 하루 3장 이상 성경을 읽자, 하루 3회 이상 사랑을 실천하자’는 3·3·3 운동을 벌였다. 신대원생들에게는 특히 기도 훈련과 성경 통달을 주문했다.

- 영성·지성·덕성의 조화를 제시한 점이 주효했던 것 같다.
지성과 영성, 덕성이 조화를 이루는 교육을 풀어보면 ‘공부하자, 기도하자, 봉사하자’는 이야기이다. 한 번 더 풀어 쓴다면 ‘열심히 공부하는 학문 공동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영성 공동체, 정성 다해 봉사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된다.

최근에 두 개를 덧붙였다. ‘평화통일을 위한 피스메이커’가 되는 것과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나라 사랑을 더한 것이다. 나라 사랑’을 포함시킨 것은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조국이 있기 때문이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평화와 통일’을 국내 최초로 필수과목으로 도 지정했다. 한국 기독교의 남은 사명은 ‘평화통일’이기 때문이다. ‘

- ‘인문학 강좌’도 대단했지 않는가?
인문학은 인성과 교양과 학문의 기초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을 만드는 학문이다. 6년간 각계 명사들을 초청해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면서 학교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학교의 대표 브랜드화 시킨 것이다. 대학 사회와 기독교에 ‘인문학의 중요성’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도 했다고 자평한다.

교육 자체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인데, 인문학 강좌를 통해 이를 기독교 정신으로 하고자 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강조했다. 자신의 몸을 갈고 닦아 다른 사람을 다스리라, 곧 섬기라는 것이었다. 저는 거기에 신앙을 더해 신앙의 바탕 위에 인격을, 인격의 바탕 위에 신학을 하라고 강조했다.

- 인문학 강좌로 오해 받기도 했는데.
인문학은 인본주의가 아닌데, 그 부분에서 오해가 있었다. 인문학은 신학의 반대가 아니다. 인(人)문학의 반대는 천(天)문학이다. 인문학은 신학을 완전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초반에 오해했던 분들도 지금은 잘 이해하고 계신다. 목사님들도 ‘인문’이라는 말을 쓰진 않지만, 설교 한 편에서 인문학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 국제적 학술교류도 활발했다.
지금은 국제화 시대인데 우리 학교가 튀빙겐대, 예나대 등 독일 최고의 대학들과 학술교류를 체결하면서 세계적 명문대가 됐다. 튀빙겐대에서는 격년으로,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함께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대학의 위상이 올라갔다.

- 100주년기념관 건립 어떻게 가능했는가? 모금에도 탁월했다.
100주년기념관 건물은 당초 2400여 평으로 계획됐지만 5700여 평으로 최종 완공됐다. 지금 100주년기념관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모금은 우리 학교의 현실을 알리고, 학교와 저의 교육철학과 비전을 알려주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물론 모금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은 있다. 필요조건은 ‘시간’이다. 한 사람과 교제하는 데는 3년 이상 걸린다. 밥도 뜸을 들여야 하듯, 사귐에 있어서 기본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 결단하게 해야 흘러 넘칠 수 있다. 충분조건은 총장의 ‘역량’이다. 열정 하나로 살았다. 사심 없이 열심히 하다 보니 오해하던 분들도 이해하게 됐다.

- 학교가 교단·사회에 공헌하려면?
사회정의와 평화에 관심을 가진 ‘일꾼’들을 키워야 한다. 그 동안 교회가 사회적 신뢰도 잃고 여러가지 비난도 받았는데, 이는 한국교회 130년 역사에 있어 구조적 문제들이 생긴 것이다. 사회적으로 신뢰를 얻고 민족적 과제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우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하여 평화를 만들고 정의로운 사회를 일궈야 한다. 민족적으로는 평화통일에 앞장서야 한다.

프랑스 혁명이 자유와 평등, 박애를 내세웠다. 여기서 기독교는 ‘박애’에 주목해야 한다. 박애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 사랑’이다. 이처럼 기독교적 사랑의 정신을 정의와 평화를 통해 구체화할 수 있는 일꾼들, 인물들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다. 사랑은 사회적 실천이기에, 기독교적 사랑은 정의와 평화로 만들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이기주의자들의 구호에 그칠 수 있다.

- 아쉬움은 없는가?
6년간 일군 여러 프로그램들을 공고히 하고 확장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유시유종(有始有終)’이라고, 시작이 있으면 마침도 있는 법 아닌가. 지금 물러나는 것이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 퇴임 후 계획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는 수 밖에 없다. 우선 좀 쉬고, ‘평화’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임마누엘 칸트처럼 ‘신 영구평화론’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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