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회목회

박형규 목사는 인천교회 목회 현황을 ‘활천’에 소상하게 기록했다. 1929년 인천교회에 파송된 그는 치밀한 계획과 뛰어난 통솔력으로 교회의 집회와 기관을 제도화시키고 능률적인 목회를 했다.

1929년 4월 28일부터 5월 6일까지 거행된 집회는 오전 3시 반부터 청신기도회(淸晨祈禱會-새벽기도회), 오전 10시 반부터 성별회(聖別會), 오후 7시 반부터는 전도회(傳道會)로 매일 3회씩 모여서 은혜를 받고 10여 명의 결신자를 얻었다. 5월 20일에는 전도회(傳道會)를 조직하고 회원 45명이 모여 전도회의 내규를 정했다.

⑴ 전도회의 임무: ① 1개월간에 1인 이상 인도해야 함. ② 1주간에 1호 이상 방문해야 함. ⑵ 전도회의 성구: ① 행 1: 8(나의 증인이 되라) ② 겔 33: 6(우리는 세상의 죄로 멸망당하는 자들과 연대책임이 있는 자들이다.) ⑶ 전도회의 표어: ① 신자만 되지 말고 복음의 일꾼이 되자. ② 듣든지 안 듣든 지 순복음만을 전하라. ③ 예배당에 올 때에 한 집 이상 들려오라. ④ 열심이 좋지만 꾸준히 일하여 쉬지 말자.

신자들은 이상의 성구와 표어를 주장하면서 열심히 활동하여 20일 만에 33명의 결신자를 얻게 되었고 7인의 세례예식과 15인의 학습예식을 했다. 그의 목회는 사경회 위주의 목회로 교회를 알차게 성장시켜 나갔다.

박 목사는 부임 후 첫 집회의 강사를 교회 내의 교역자들로 하되 사경회를 열어 봄에는 4월28일부터 9일간 신앙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했고 가을에는 10월 21일부터 2주간 새벽 4시부터 6시까지의 기도회와 오후 9시 30분의 사경회를 개최하여 34명이 회개하고 은혜를 받는 성과를 거뒀다.   

“인천교회는 새벽기도회가 끊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있다. 어떤 때는 예배당에서 울음소리가 나므로 가보면 청년이 와서 기도하고 또 매일 자기 집에서 가정예배를 보다가 주일이면 꼭 성전에 나와서 새벽기도를 하고 매일 새벽마다 5, 6인씩 모여서 차례로 성경 한 장씩을 읽고서 기도로써 각각 집에 돌아간다. 이 기도로써 주의 크신 역사가 일어날 줄 믿는다.

박 목사는 ‘활천’에 ‘仁川敎會 夏間 役使記’를 기고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자진하여 노방전도집회, 가정 집회, 하계아동성경학교강습회, 청신기도회 등에 여러 가지로 역사하는 가운데 주님 앞에 영광 돌리며 재미있음을 감사한다.
가정 집회는 2, 3개 처의 기도소를 열어 놓고 일주일에 2, 3차례 계속해서 교역자와 신자들이 씩씩한 기상으로 출동하여 결신자를 방문하여 출석하게 하고 말씀을 가르쳤다. 가정 집회와 전도는 교회의 일과로 되어있다.

여름 동안 집회를 쉬려고 했더니, 오히려 직원들이 한 차례 더 하자고 하여 두 차례씩 노방전도를 실시했다. 의견을 종합하여 전도구역과 날짜를 정하고 신자 가정에 모여 기도한 후 넓은 장소를 찾아가서 수십 명의 신자들이 동그랗게 원을 이루고 북을 쾅쾅 치며 찬미를 불렀다.
“이 땔세 이 땔세 인율함을 얻을 때가 이땔세” 찬송을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남녀노소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신자들이 기도, 특별찬송, 간증설교로 복음을 전했고 청중들은 달게 받아들이고 복음에 복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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