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목회자윤리위, 이성봉·이기풍·장기려의 삶 조명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에는 뜨거운 기도와 집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의 길을 묵묵하게 따랐던 선배 신앙인들의 헌신이 자리잡고 있다. 부와 명예를 뒤로 하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쳤던 신앙 선배인 이성봉 목사와 이기풍 목사, 장기려 박사의 삶과 지금의 한국교회를 돌아보는 발표회가 지난 7월 19일 온누리교회 양재성전에서 열렸다.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위원장 전병금 목사)가 주최하고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회장 김경원 목사)와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가 후원한 발표회에서 발제자들은 신앙선배들의 가난과 고난, 섬김의 삶을 닮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의 무디, 이성봉 목사의 삶’에 대해 발표한 김명혁 목사(한복협 회장)는 이성봉 목사를 사도바울처럼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전도자라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의 무디 이성봉 목사는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 구원에 사로잡혀 복음전도와 교회부흥에 헌신하면서 가난과 고난과 섬김의 삶을 살았다”며 이성봉 목사의 삶을 ‘은혜 체험적 삶’, ‘구령과 교회부흥에 헌신한 삶’, ‘청빈의 삶’,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 ‘예수중심주의 신앙’, ‘회개와 중생의 신앙’, ‘성결복음의 신앙’, ‘신유복음의 신앙’, ‘재림복음의 신앙’으로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성봉 목사의 삶은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이었다”며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부흥회를 인도할 때마다 사례비를 적지 않게 받곤 했지만, 그 사례비는 자기 개인이나 가족을 위해서 사용하기보다 작은 교회와 어려움에 처한 교회를 위해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제주도 복음화의 선구자 이기풍 목사와 윤함애 사모를 주제로 발표한 박명수 교수(서울신대)는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역동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기풍 목사처럼 복음만 바라보며 헌신하는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제주도와 전남의 섬 지역에서 선교했던 이기풍 목사의 삶에 대해 발표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이기풍 목사는 목사로 안수받을 때부터 전도목사의 사명을 다짐하고 순회사역자로 평생을 헌신했다. 안수 후 이 목사는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복음을 전했으며 이후에는 전남의 섬 지역을 돌면서 사랑으로 교인들을 품고 어려운 교회를 돌봤다.

이기풍 목사의 사역은 ‘사랑의 헌신’과 ‘신유의 사역’, ‘영적 전쟁’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 목사가 처음 제주도에 부임했을 당시 현지인들은 그를 무시하고 외면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큰 홍수가 났고 한 여인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되었다. 이기풍 목사는 지체없이 물로 뛰어들어 그 여인을 구했고 이 일은 현지인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병을 고치거나 토속신앙이 강했던 섬 지역에서 이 목사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드러내며 복음을 전했다. 박 교수는 “이기풍 목사의 모든 사역에는 겸손하게 주민들을 섬기고 그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영혼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이상규 교수(고신대)는 장기려 박사의 삶에 대해 발표했다. 이상규 교수에 따르면 장기려 박사는 평생을 의사로 살며 기독교의 정신을 실천했던 의료인이었다. 부산 복음병원 원장을 지내며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의료보험제도인 청십자 의료협동조합을 창설하고 청십자의원을 개원하는 등 서민을 위한 섬김의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을 결정했던 행동양식, 신념체계, 사회적 활동의 기초는 기독교 신앙이었다.

이 교수는 “장기려 박사는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여 자신에게는 인색했으나 남에게는 관대한 삶을 사셨다”며 “청빈과 가난은 그의 삶의 태도였고, 섬김은 삶의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장기려 박사를 ‘사랑을 실천한 그리스도인’, ‘무사무욕의 삶을 살았던 그리스도인’, ‘함께 사는 사회를 추구했던 그리스도인’, ‘종파주의로부터 자유했던 그리스도인’, ‘기독교적 가치를 고양했던 그리스도인’으로 정의했다.

그는 “장기려 박사는 일생동안 봉사자의 삶을 살았고 겸손하고도 소박한 삶을 살았다”며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의 두 측면은 그의 생애와 삶, 의료 활동을 이끌어간 두 기둥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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