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직격탄 중소기업 출구가 없다
안산지역 시화·반월 공단 등 불황·환율급등·자금난 ‘삼중고’
이주노동자 해고 0순위, 차디찬 거리로 내몰려 … 피난처 절실

국내 최대 중소기업 밀집지역인 안산 반월·시화공단. 지난 2일 찾아간 안산 시화공단의 풍경은 연초라지만 너무 한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새해 시무식을 안 한 업체들이 많은 탓일까? 대부분 업체들의 입구는 굳게 닫혀있고 건물 안의 불은 꺼져 있었다. 주변 도로에는 사람뿐 아니라 차량조차 잘 다니지 않아 적막감이 감돌았다. 골목에는 공장매매, 폐업 컨설팅 등의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있었다.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이 잘 들어맞는 안산지역의 모습은 경제위기로 휘청대는 중소기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건설재료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안산공단은 건설 경기 침체, 자동차 업계의 깊은 불황으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불황의 여파로 안산공단 내 중소업체들 중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희망이 안 보인다

17년 넘게 안산공단 안에서 플라스틱 가공품을 생산해온 A업체. 지난해 직원수가 70여명이던 이곳은 연말까지 거의 절반에 가까운 직원을 감원했다. 남은 직원들은 아직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게 감사하지만 자신도 감원대상이 될 수 있는 현실이 불안하기만 하다.

업체 대표 이영만 사장은 “새해 희망이 잘 안 보인다”는 비관적인 말부터 꺼냈다. 지난 98년 IMF도 잘 이겨냈지만 이번 경제위기는 IMF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IMF 때는 점점 나아지는 게 보였지만 이번에는 바닥이 안 보인다는 게 문제에요. 무언가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있어야 누군가 투자도 하고 그럴 텐데, 지금은 무조건 움츠리고 있어서 걱정이에요.

이 사장은 당장 이번 달에 지급할 직원 임금을 걱정하고 있었다. “마지막 주 설도 끼어있어 상여금도 주어야 할 텐데 자금마련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쉰다.         

원달러 환율급등으로 인한 업체들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화공약품 제조업체인 B사 대표 황경식 사장은 판매 실적이 올라도 결국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이 업체는 그동안 주석약품 제조기술을 국산화해 반도체 칩 부품, 커넥터, 인쇄회로기판 업체 등에 납품, 30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지난해 결산은 적자를 겨우 면할 수준이었다. 이유는 폭등한 환율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이 2배로 뛰었지만 납품가를 당장 그만큼 올릴 수는 없었다.

황 사장은 “6개월 전에는 40피트 컨테이너 하나에 2000만원이던 원재료 가격이 4800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며 “기업들의 주문이 끊길까봐 가격을 올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안산공단 내 업체들의 어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하반기부터 시중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이 거의 끊긴 상태라 자금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상반기 부도 처리되는 업체들이 속출할거라는 게 공단 안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안산공단 주변에 북적이던 차량과 인적은 현재 거의 끊어졌다

부서진 코리언드림

세계 경제위기는 코리언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은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깊은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안산공단에 넘쳐나던 외국인근로자들은 이제 일터에서 쫓겨나 차디찬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외국인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선교에 나서고 있는 공단선교센터(외국인근로자 쉼터, 대표 김한나 목사)에는 최근 실직한 이주노동자들의 취업상담 건수가 부쩍 늘었다. 한주에 30~40명이던 상담 건수는 요즈음 거의 3배로 늘어났다는 게 센터 상담원의 얘기다. 상담전화도 끊기가 무섭게 다시 벨이 울려 하루 종일 전화통만 붙잡고 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외국인근로자들의 실직율이 급증하는 것은 경제가 악화된 상황에서 이들이 해고 0순위가 되기 때문이다. 실직한 외국인근로자들의 문제는 생각보다 절박하다. 한마디로 대책이 없다. 두 달 안에 새 근무지를 구하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불법체류자가 되어 귀국하거나 단속을 피해 도망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의 절박함을 노린 취업알선 브로커들에게 당해 두 번 눈물을 흘리는 외국인들도 생겨나고 있다. 브로커에게 300만원 정도 건네면 취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취업을 한지 두 달도 못되어 다시 해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브로커에게 돈을 받은 일부 업체가 일단 취직을 시켰다 적당한 시기,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로 해고를 통보하기 때문이다. 결국 오갈 데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외국인근로자 선교기관인데 재정이 열악한 이들 선교단체들도 현재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공단선교센터 관계자는 “최근에는 사업장을 정리한 업주들이 직접 외국인근로자들을 데리고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며 “경제위기가 풀리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외국인근로자들의 취업알선을 위해 지역 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가 보지만 상담 대기시간만 2시간. 취업을 알아보라며 2~3곳의 사업장 전화번호를 알려 주지만 대개 지난번 전화했던 곳이거나 인원채용을 하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취업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외국인근로자들에게 큰 고통이다. 회사 기숙사에서 쫓겨나 방을 구하면 방세와 전기세, 식비 등으로 한 달에 약 50만원이 든다. 두 달이면 100만원이란 돈을 허비하는데 빈털터리가 되어도 외국인이란 신분 때문에 구걸이나 노숙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다.

궁지에 몰린 외국인근로자들이 금품을 노리고 범죄에 나서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어 거리를 나다니는 것조차 불편하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낮에는 방에서 기거하고 밤에는 일용직으로나마 일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이 늘고 있다.         

최악의 경제위기로 인해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즈음. 정든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타국에서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외국인근로자들은 올해 한국교회가 가장 먼저 돌봐야 할 소외된 이웃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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