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서 유머를 사용해도 될까?

손동식 목사
설교에서 유머를 사용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는 어찌보면 오늘날 큰 화두가 아니다. 그러나 설교에서의 유머 사용은 사소해 보이지만 설교 전반의 무게와 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화두일 수 있다. 비록 현대의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설교에서의 유머 사용에 관해 긍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모든 설교자들이 그것의 기능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만은 아니다.

설교시 유머 사용에 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대표적인 설교자는 아마도 마틴 로이드 존스(M. Lloyd-Jones)일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유머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유머가 설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지극히’ 경계했다. 로이드 존스는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의 설교에서 유머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로이드 존스는 그 이유에 대해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경우에는 강단에서 유머를 사용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강단에 서면 저는 언제나 저 자신이 지옥에 갈지도 모를 영혼들과 하나님, 이 양자의 중간 지점에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서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책임이 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므로 감히 유머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로이드 존스가 강단에서 유머를 사용하지 않은 주된 이유는 ‘사람들의 영혼과 그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설교자로서의 엄숙한 책임 때문이었다. 로이드 존스는 강단에서 억지로 사람을 웃기려 하는 시도를 한마디로 꼴불견으로 여겼다.

로이드 존스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설교에서 유머를 분별력 있게 사용하지 않으면 자칫 설교장은 희극무대로 전락하고 만다. 필자는 이러한 위험을 언젠가 어느 한 기독 텔레비전의 한 집회 광고에서 보았다. 그 광고는 개그맨 이상으로 회중을 웃기고 유머를 잘 사용하는 한 유명 설교자의 집회 광고였다. 그 광고 영상은 그 집회에 온 분들에게 참여의 이유와 기대에 관한 대답들을 짧은 영상으로 예고편으로 편집하였다.

그 영상에서 권사님처럼 보이는 한 분이 하신 짧은 이야기는 잊을 수가 없다. “오늘 이 집회에 왜 오셨어요?”라고 물었더니 그 분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 실~컷 웃어보려고요” 필자는 그 대답을 들으며 그 설교자가 설교를 멈추거나 우회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느꼈다. 그 분의 설교는 회중에게 ‘하나님 말씀의’ 대언이 아니라 ‘개그’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설교에서의 유머 사용에 관해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첫째는 우리 주님의 설교의 모범 때문이다. 비록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 분의 설교 속에는 분명 당시의 서민들이 들었을 때 크게 웃음 지었을 유머와 비유로 가득차 있다. 존 스토트(J. Stott)는 “예수님의 무기고에 숨겨진 무기 가운데 하나는 유머라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고 말한다.

둘째, 웃음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설교에서 울음이 허용된다면 마땅히 웃음도 허용되어야 한다. 셋째, 설교가 담고 있는 본질 때문이다. 예수님을 영접치 않는 죄인에게 복음은 무서운 심판의 소식이다. 그러나 그 분을 영접한 자녀에게 복된 소식을 담고 있는 ‘복음’의 설교적 성격은 본질적으로 웃음과 희락적 요소를 담고 있다. 따라서 설교에서의 유머의 사용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분별력 없이 유머를 강단에서 사용하는 것은 반대한다. 왜냐하면 설교자가 강단에 서는 주된 이유는 회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교에서 유머는 철저하게 설교를 돕는 겸손한 ’종’이요, ‘시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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