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단 vs 텔레비전

현대 강단은 교회 역사상 가장 힘겨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모함으로 몇 시간동안 말씀을 청종하던 옛 부흥회와 사경회의 전통은 희미해져 가고 강단은 그 권위와 효용성에 관해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반권위적인 분위기 속에서 낮아져 가는 강단의 권위와 굳이 교회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설교의 홍수, 그리고 지난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매스미디어 혁명은 청중으로 하여금 설교에 관한 매력과 인내심을 빠르게 잃게 만들고 있다.

현대 강단이 처해있는 이러한 상황을 미국의 설교학자, 크래독(F.B. Craddock)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강단’이라고 묘사했으며, 위어스비(W.Wiersbe)는 ‘강단 위의 해골, 회중석의 송장’이라는 섬뜩한 비유를 통해 오늘 강단이 처한 위기를 심각하게 진단했다. 정인교 교수(서울신대)는 한국 강단이 처해있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진단한다. “솔직히 말하면 변화하는 시대를 설교자들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확실히 우리의 설교는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그 위기의 진앙지는 설교자를 둘러 싸고 있는 열악한 환경과 설교자 자신이다.”

이러한 시대의 다양한 도전들 중 이 시대 설교자가 깊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는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매스미디어의 영향이다. 오래전 존 스토트는 설교와 관련하여 텔레비전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이렇게 평가하였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이 주의를 집중해서 책임있게 무엇에 귀를 기울이는 일을 점점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설교자는 청중들로부터 마땅한 반응을 얻어내기는 고사하고 산만한 청중의 주의력에 고통당한다.” 그리고 설교자는 텔레비전에 길들여진 청중을 염두에 두고 설교해야 함을 강조한다.

스피디하고 흥미롭게 움직이는 텔레비전 화면에 익숙한 회중은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설교가 시작되면 마음의 채널을 돌리거나 스위치를 꺼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느리고 단조롭고 지루한 설교로는 텔레비전에 익숙한 회중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스토트는 말한다. “비록 설교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설교는 확실히 보완될 필요가 있다.”

많은 현대 설교학자들이 동일하게 강조하듯,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다양한 국면들은 현대 강단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리차드 젠센(R. Jensen)은 오늘날 강단에 필요한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미디어에 의해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변화된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교회는 변화된 방식들로 설교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설교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설교자는 회중의 삶 깊숙이 침투해온 텔레비전 ‘혁명’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그러한 환경에 맞는 설교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곧 ‘듣는 설교’에서 ‘듣고 보는’ 설교로의 전환이다.

엘리자베스 악트마이어(E. Achtemeier)는 변화된 환경에 따른 설교언어의 필요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는 주로 시각적 자극에 따라 행동하는 데 익숙한 세대들에게 설교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설교자들은 성경적 메시지를 모든 감각을 일깨워주는 언어, 다시 말해, 회중들이 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맛볼 수 있는 언어들로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중들은 복음을 구성하고 있는 언어들에 결코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강단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매스미디어 혁명의 풍랑을 뚫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성실한 말씀연구와 묵직한 영성은 말할 것도 없고 복음을 시대와 문화의 옷을 입혀 전할 한줄기 바람같은 설교자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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