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윤동주의 재발견

윤동주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중국 길림성 명동촌이다. 명동촌은 문병규, 김약연, 남위원 등이 이끄는 가문이 집단 이주해 형성한 정착촌이다. 문병규는 문익환 목사의 고조부다. 김약연은 윤동주의 생가 바로 옆에 명동교회를 세웠으며, 캐나다인 선교사 베이커가 1920년 은진학교, 신흥학교 등을 이 곳에 세우기도 했다. 이렇듯 명동촌은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곳으로 자리매김한 정착촌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자라난 윤동주의 시 속에는 기독교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고민들이 담겨있다.

윤동주의 여동생 윤혜원 권사의 사위인 강석찬 목사(예따람 공동체)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윤동주를 이해한다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 제목에서 하늘은 하나님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다”며 “그의 삶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으로 살고자 하는 고민으로 채워져 있다”고 말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돌아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자화상’ 중)

우물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는 이 시를 신앙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거울삼아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매일 성경 말씀에 자신을 비춰보며 예수를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윤동주가 자신에 대해 느꼈던 ‘미움’과 ‘가엾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강석찬 목사는 “예수가 보여준 길을 뒤따르는 우리는 그 길을 잘 걷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다”며 “윤동주의 시 속에는 그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드러난다”고 해석했다. 나라와 언어를 빼앗겼을 뿐 아니라 신앙까지 철저하게 통제 당했던 당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처절한 고뇌가 녹아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윤동주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또 하나의 자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예수 또한  로마 치하에서 고통 받았던 이스라엘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로마 군인들에게 갖은 모욕을 당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동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하며 그처럼 십자가를 지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예수도 윤동주도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괴로웠지만, 유일한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괴로우면서도 행복하다’고 표현했던 것은 아닐까.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져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십자가’ 중)

이처럼 신앙대로 살기 힘든 시절에 태어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부끄러워했지만, 윤동주의 시는 순수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발걸음을 멈추어/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사람이 되지”/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아우의 인상화’ 중)

여기서의 ‘사람’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란 윤동주의 소망이 녹아져 있을 것이다. 떳떳하게 살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어린 동생의 입을 빌려 고백했던 것은 아닐지.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하늘 소망을 바라보는 것이 기독교인의 근본적인 신앙이기 때문이다.

영화 <동주>가 극장에 걸려있는 동안 한 번 쯤 감상하며, 암울했던 시절 하나님과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몸부림쳤던 시인 윤동주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해보는 것은 어떨까.

 

숭실중학교 시절 문익환 목사와 함께
일본 유학 시절 송몽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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