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6장 3~4절을 보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나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라고 하였다.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님의 신성을 신뢰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축복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필자는 여기서는 예수님에 대한 신뢰는 논외로 하고 인간관계의 신뢰에 대해서 조명해보고자 한다.

인간관계의 신뢰는 각 사람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는 인격과 인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지식과 지혜와 재능 그리고 부와 권력을 소유했다고 해서 신뢰마저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직성과 성실성 그리고 근검성과 근면성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정신적, 물질적 신용성이 충분하게 평가 되어야하며 이것이 객관적으로 담보되어야 주어지는 가치이다.

이렇듯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신뢰가 주어지지 않으면 진정한 인간관계 형성은 사실상 어렵다고 생각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지는 사람은 성공의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신뢰가 주어지지 않는 사람은 지식과 지혜와 재능이 있고 부와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중심에 이끌리어 오히려 이기주의적인 발상을 많이 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가증스럽게 느껴지고 거부감을 갖게 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신뢰를 바탕으로한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좋은 인간관계로 생각되었던 사람이 자신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추하게 매몰되어버리는 일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신뢰했던 사람에게서는 실망의 결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반면에 평소에 적극적인 신뢰보다는 평범한 인간관계로 맺어 온 사람에게서 의외로 희망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선입견이나 편견에서 벗어나 보편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인간관계를 맺고 그 범주에서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신뢰하였던 사람이 자기중심에 이끌리어 변질과 변절로 배신을 하여 실망을 안겨주게 될 때 그것으로 입는 상처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평소에 깊은 인간관계로 얽혀지지도 않았던 사람이 어떠한 이해관계 앞에서 호의와 호감을 보여 줄 때 그것으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특별한 신뢰를 갖지 않았던 사람으로부터 의외로 호의나 호감을 받아 신뢰가 심어지는 인간관계야 말로 기대되고 신뢰가 지속될 수 있다. 신뢰의 바탕에는 내가 은혜를 입었으니 나도 은혜를 갚아야지라는 보상심리가 주어지기 때문에 개인 간의 좋은 인간관계를 더욱 밝게 하는데 충분하다고 본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신뢰를 주고받는 인간관계가 되지 않고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도 양심과 영혼을 속이지 않고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가 된다면 참 좋겠다.

작금의 우리 교단의 상황을 놓고 보면 상호 신뢰하지 못하여 지방회나 총회가 어렵게 얽혀지는 일들이 왕왕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교단에서 일부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거나 하고 있는 목회자나 장로들이 상호 신뢰를 주거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 교단은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 휘말릴 수밖에 없고 결국은 성도들에게 실망만 안겨주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 교단 구성원 모두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상호 신뢰를 회복하여야 할 때다. 교회와 당회가 하나 되고 지방회와 총회가 하나 되고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뜻도 하나되며 화목하는 일에 하나되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는 교단이 되기 위한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 주시기 때문에 이러한 축복을 받는 주인공들이 우리 교단 구성원 모두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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