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 중 하나는 바보입니다. 양념처럼 드라마 속에 살짝 얹혀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곤 합니다.

바보들은 어리석고, 멍청하고, 단순하며, 순진하기가 비길 데가 없으며 황당무계하고, 또 때로는 익살스럽기까지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보들은 그들 스스로가 연출해내는 천태만상의 어리석고 바보스런 행위를 통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메마른 생활에 웃음을 공급해 줍니다. 그들의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우행을 통해서 오히려 보다 뛰어난 사람들의 우월적인 교만함을 부끄럽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바보들은 본질적으로 웃음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이며, 사회의 정서적 순화를 가져다주는 매개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바보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상식을 벗어난 행위, 우리가 일반적으로 짐작하는 표준적인 일들을 기준없이 마구 왜곡함으로써 보여주는 예측할 수 없는 언행들은 언제나 우리들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합니다.

이런 바보들에게 발견되는 한결같은 공통점은 그 천성이 순진하기 때문에 악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비록 엉뚱하고 못나고, 파격적인 행동을 하고, 모자라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악하거나 남을 공격하거나 고의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단순하고 순수해서 흔히 조롱의 대상이 되며 또 쉽게 속임수에 넘어가는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정신적인, 거기다가 더러는 신체적인 결함까지 가졌으면서도 그 내면의 세계에 있어서는 비장애인들보다도 훨씬 순진하고 진실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바보가 되라고 하는 사도바울의 권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풍부한 은사를 많이 받은 고린도교회였지만, 악한 사회환경과 세상적인 지혜를 좇는 지도자들로 바람잘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며 무질서와 분란, 경쟁과 분열을 일삼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도바울은 자신을 속이지 말고,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모두 바보가 되는 것, 그것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길임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왜 지혜있는 자들이 바보가 되어야 할까요? 지혜있고 현명한 것에는 언제든지 독선이나, 이기적인 간교함, 허위와 거짓, 악한 음모가 있을 수 있지만, 바보에게는 늘 겸양과 순진, 자연스러움, 그리고 선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진한 바보와 어린 아이의 아무것도 모르는 경험 부재의 미덕을 흔히 성자의 경우와 비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바보는 웃음으로 다른 이들의 긴장을 완화시켜준다는 점에서 타자 지향적입니다. 바보는 온갖 꾸임없는 기행을 연출하면서 남을 웃게 만듭니다. 또 바보는 정형화되고 고정된 인식을 전환시키고 무효화시키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보가 바라보는 사물의 세계는 일반적인 시각과 논리가 고정시킨 합리적 세계를 넘어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보라야만 이룰 수 있는 더 높은 경지의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게 해줍니다.

결국 바보는 이기적인 악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선한 인간입니다. 그에게는 타인을 해롭게 하는 간교함이나 독선적 아집이나, 위선이 없습니다. 남의 조롱과 놀림감은 될지언정, 남을 기만하거나 술수와 잔꾀로서 타인을 함정에 빠뜨리지 않습니다. 바보는 오염되지 않은 물처럼 맑으며 백지처럼 깨끗하고 순진하여 가면이 없는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바보가 되라고 권면한 그 안에는 단순한 겸양의 의미를 넘어서는 깊고도 단단한 가르침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 고린도교회뿐만 아니라 역사의 시공간을 넘어 오늘의 우리 교회에도 고스란히 전해져야 할 가르침이라고 믿습니다.

오늘의 우리 교회에는 지혜 있고 분별력 있고 사리판단에 밝은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바보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발빠른 행보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수많은 파당을 만들고 저마다 지혜로운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 많은 것들에게 넉넉히 속으며 참으며, 너털웃음을 날릴 줄 아는 바보가 절실히 필요한 곳이 바로 우리의 교회라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수없이 많은 똑똑한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바보 목사로 목회할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비록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상식적인 눈에는 무식하고 무능한 목사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 땅에서 바보같은 목사들을 더 지혜롭게 여겨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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