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람페 교수(하이델베르크대학교)

같은 평화를 주장하지만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로마가 주장한 평화를 바라본 누가 기자와 요한계시록 기자를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누가의 기자는 로마제국의 평화를 누리며 제국에서 충실한 교육을 받은 시민으로 그리스도교에 적응한 사람이다. 반면에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폭력에 대한 환상과 임박한 종말을 설파했던 저항예언자였다. 한 사람은 로마제국의 체제에 잘 적응했고 또 다른 사람은 사회체제를 포기하고 로마의 평화가 빨리 망하기를 바랬다.

누가 기자는 평화를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물질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는 것으로 이해했다. 자신이 속한 제도권 하에서 평화를 누리며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행위를 평화로 인식한 것이다.

반면에 요한계시록의 기자는 로마 황제의 종교적 숭배와 로마의 식민지 정책이 짧은 시간 내에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잘못된 사회체제 속에서 누리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또한 요한계시록 기자는 정치적, 경제적 국가조직과 사회조직에 대해 과격하게 맞서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평화의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누가 기자는 조직의 교체가 아닌 로마의 사회조직으로 적응하는 것을 지지했다.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신약성서로부터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체제에 대한 순응을 평화로 주장할 수도 있고 국가조직에 과격하게 맞서는 것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평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존중하고 함께 협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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