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목사
지난 주일은 몹시 힘든 날이었다. 너무 속이 상해 어디론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농촌의 작은 교회는 세상에서 회자되는 관계로 말한다면, 성도가 갑이고 목회자는 을이다. 교회 그만 나가겠다는 통보는 억장을 무너지게 만든다.

그 중 마음이 쓰이는 분이 윤 집사이다. 지난 주 목요일에 그는 고구마와 고추를 수확한다고 했다. 그가 부탁하기 전에 내가 먼저 승용차로 집까지 수확물들을 운반해 주겠다고 했다. 그 집사님의 집에서 밭까지는 십 리 정도 되는 거리이다. 그런데 그 날 손님들이 들이 닥친 데다 교회 텃밭 고구마를 캐다 보니 약속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좀 늦더라도 운반해 줄 요량으로 몇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받지를 않았다.

그날 밤 늦게 통화가 되었는데 목소리가 많이 뒤틀려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일 아침 전화를 하니 교회 그만 나가기로 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눈물이 울컥 나오려 했다. 예배를 앞두고 그의 밭으로 갔다. 윤 집사님이 막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에게서 무엇 때문에 교회를 그만 나오려 하는지 물었다. 그는 목사님이 되어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헌금 송으로 부르는 찬송가 50장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를 다른 것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주문도 해 왔다. 헌금을 은근히 강요하는 것 같아 싫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목요일 약속 어긴 것을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았다는 얘기는 꺼내 보지도 못했다. 헌금 송은 당장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윤 집사님이 순간적으로 감정이 올라 목사님 속 썩인 것 같아 죄송하다며 사과를 해 왔다. 나는 울먹이며 그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야말로 큰 파도가 한 번 쓸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윤 집사님과 생각보다 긴 시간을 대화하는 동안에 성도들로부터 전화가 쇄도했다. 왜 데리러 오지 않느냐는 성화 전화였다. 이런 연유로 주일 예배가 제 시각에 시작하지를 못했다. 그런데 설교가 끝나고 봉헌 기도를 마칠 때였다. 이 권사님이 화난 표정을 지으며 교회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아내가 따라 나가고 밖에서 주고 받는 말소리가 크고(권사님) 작게(아내) 들려왔다.

아내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이 권사님이 대단히 화가 나셨어요. 교회에 안 나오겠다고 하셔요.” 교회에 나오지 않은 권사님 두 분은 명단이 올랐는데, 정작 교회에 나와 헌금한 자신은 빠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지난 주 헌금한 것을 착각하신 것 같다고 말씀 드려도 통하지 않고, 두 권사님은 지난 주일 예배에 나오신 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아닌 것을 우길 때는 뾰족한 수가 없다. 자신의 주장이 옳을 때는 목사님이 실수했으니 더 이상 교회 나오지 않겠다고 하고, 또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경우엔 기분 나빠 교회 안 나오겠다고 한다. 연세 드신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렇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이다.

예배당에서 잠시 기도한 뒤 권사님 댁을 찾아갔다. 권사님은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 않고 큰 아들 부부가 우리를 맞았다. 이 들도 오랜만에 어머님을 뵈러 왔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을 갖고 아내는 주뼛주뼛하다가 권사님이 예배도 끝나기 전 화를 내며 나간 전후 상황을 아들 부부에게 이야기했다.

옆에 있던 며느리가 “요즘 와서 어머니가 그런 실수를 자주 하신다”며 “치매기가 좀 있는 것 같으니 목사님이 이해하시라”고 했다. 농촌교회에서 많지 않은 성도들을 섬기시는 목사님 내외분의 어려움을 십분 안다고도 했다. 나는 나의 왜소한 목회자 됨을 탄식하며 터벅터벅 교회로 돌아왔다. 나는 왜 이것 밖에 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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