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9:17)

남봉룡 목사(충서중앙지방·상궁교회)
19세기 미국과 영국에 큰 부흥을 일으킨 부흥사 드와이트 무디의 설교 가운데 자전거 예화가 있습니다. 당시에 자전거가 처음 나왔는데, 그 자전거 타는 재미가 신앙생활을 방해하니까 절대로 자전거를 사서도 즐겨도 안 된다고 내용입니다.

이 설교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 있었을 겁니다. 시대가 변하면 거기에 따라 변해야 될 게 있습니다. 이것은 무조건 유행을 좇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
오늘 본문 중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새 포도주'는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그 분이 가는 곳마다 엄청난 변화의 장이 열립니다. 새 포도주가 계속 발효되면서 가죽 부대를 팽창시키는 것처럼 예수님이 가는 곳곳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병든 자가 일어났습니다. 죽은 자도 살아났습니다.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로 바뀌었습니다.

죄에 매어 인생이, 영적으로 이미 죽어있던 사람과 도무지 회생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죽은 시체는 좁은 관속에 묶어둘 수 있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관속에 넣어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새 부대는 무엇인가?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보관용기는 가죽 부대였습니다. 가죽 부대는 양이나 염소의 가죽을 벗겨서 만듭니다. 가죽이 새 것일 때는 부대가 신축성이 좋아서 새 술이 들어가 발효가 되면 풍선처럼 늘어나지만 낡아지면 뻣뻣해지기 때문에 신축성이 없어서 포도주가 발효되어 압력이 늘어나면서 터지게 됩니다.

신축성이 없는 낡은 가죽부대에 새 술을 담으면 부대가 터져 부대도 못쓰게 될 뿐 아니라 포도주도 쏟아져 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낡은 부대는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계율, 틀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가지고 있던 규율을 정해놓고 그 틀 안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정죄를 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새 가죽 부대를 찾으시는 예수님
예수님 당시에도 지식인, 재력가, 권세가, 종교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내려놓아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진 것도 내려놓을 것도 별로 없는 사람들을 제자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자기를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제자로 만드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위해 부름 받은 제자들은 이 복음 때문에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하기까지 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는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주를 위해 순교까지 불사한 신앙 선배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습니다.

또 이렇게 헌신하는 믿음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이 많아지고 교회가 비약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교회 안팎에서 교회를 향한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예수님은 제자를 찾고 계십니다. 새 가죽부대는 반드시 동물의 희생이 있어야 구할 수 있듯이 우리 성결 교인이, 성결 교회 목사가 헌신되어져 주님의 들어 쓰시는 도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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