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이랬는데, 역사 속으로 사라져 옛 서울신대 건물 역사 속으로
서양식 3대 건축물, 안정성 문제로 철거

옛 서울신대 건물 역사 속으로
서양식 3대 건축물, 안정성 문제로 철거

교단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건물이었던 쌍둥이빌딩 옛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대) 교사가 2010년 11월 완전히 철거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21년에 서울 아현동 애오개 언덕에 5층 쌍둥이 빌딩으로 세워졌던 서울신대의 아현동 옛 교사는 건립 당시 명동성당, 종로 YMCA 건물과 함께 서양식 3대 건축물로 꼽혔다. 이 건물은 강당과 강의실, 사무실과 기숙사, 식당을 고루 갖춘 서양식 구조의 학교 건물로 당시 아시아에서도 보기 드문 근대사적 가치와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큰 역사적 건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1974년 서울신대가 부천으로 이전한 후 옛 경성성서학원 교사는 매각돼 명지한방병원 등으로 사용되다 1988년 아현교회가 자비로 매입해 교육관으로 사용하는 등 20년 넘게 총회 지원없이 단독으로 보존해왔다. 그러다 아현교회 100주년을 맞아 교회건축을 준비하던 중 안전성 등의 문제로 철거하게 됐다.

 

입후보예정자등록제 1년 만에 폐지
대외·개인 활동 위축 등 부정적 평가

교단 총회 임원과 총무 입후보예정자등록제는 2010년 제104년차 총회에서 처음 시행돼 제105년차 총회임원 및 총무 선거에 적용됐으나 1년 만에 폐지됐다. 제104년차 총회에서 개정된 선거관리규정(제5조 2항 나호)에 따라 신설된 제도로 총회 임원 및 총무선거 출마 희망자가 정식후보로 등록하기 이전에 일종의 예비 후보로 등록하는 제도이다.

당시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 등록 이전에 공공연히 이뤄지는 사전 선거운동을 차단하고 적발 시에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입후보자 예정등록 등을 골자로 선관위 운영규정을 개정했다. 그러나 예비등록으로 인해 선거운동 기간이 길어져 오랫동안 입후보자들의 대외활동과 개인적인 활동이 위축되는 점 등 부정적 평가가 컸다. 결국 예비등록제가 시행된 첫 해 선거운동 등의 규정을 담은 선관위 운영규정 제5조가 대폭 개정되면서 이 제도는 1년 만에 폐지되는 운명을 맞았다.

 

지방회 주관 목사안수식 종결
2013년부터 교단 사업으로 진행

교단 목사안수식은 2012년까지 각 지방회 주관으로 열리다가 2013년부터 교단 주최로 바뀌었다.
목사안수식은 교단이 주관해오다가 1996년 지역총회가 신설됨에 따라 업무를 넘겨주었고 2004년 제98차 총회에서 지역총회가 폐지되어 다시 지방회로 이관됐다.

목사안수식 주관이 2013년 다시 총회로 넘어가면서 지방회 차원의 목사안수식은 8년 만에 종식됐다. 지방회가 주관하던 시절 목사안수식 풍경도 지역별로 조금씩 달랐다. 목사안수 후보가 많은 지역은 큰 행사로 치렀지만 안수자가 적은 지방은 지역협의회 차원의 연합행사로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교단이 목사안수식을 주관하면서 목사안수 후보자와 가족, 봉사자, 축하객까지 수천 명이 모이면서 총회 다음으로 큰 행사가 됐다. 2013년과 2014년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성별회·성결인대회를 겸해 성결성 회복과 경건함을 더하기도 했다.

 

예·기성 공동캘린더 제작·보급
1회 공동 작업 후 개별 제작

본 교단과 형제교단인 예수교대한성결교회가 2004년 캘린더를 공동으로 제작, 보급했다. 본 교단의 남전도회전국연합회가 선교사업으로 교단 캘린더를 제작, 보급하던 중 예성측의 요청으로 캘린더 사업과 관련한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예·기성 캘린더를 제작하게 됐다. 예성측은 그 때까지 교단 캘린더를 제작한 경험이 없어 공동캘린더 제작에 본 교단의 역할이 컸다.

이에 따라 처음으로 같은 디자인과 문양이 담긴 양 교단 공동 캘린더가 2004년 첫 선을 보였다. 당시 활발했던 양 교단 평신도 교류가 만들어낸 가시적 열매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공동 캘린더 사업은 단 1회로 그쳤다. 양 교단의 행사 일정이 달라 교단 캘린더 표기가 어렵고 예성도 교단 캘린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후 양 교단은 현재까지 독자적으로 캘린더를 제작해 보급하고 있다.

 

서울신대 목회대학원, 신대원에 통합
목회자 재교육, 야간과정으로 인기

서울신학대학교 목회대학원은 지난 1995년 10월 정식 인가를 얻으면서 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모집인원은 120명. 1996년부터 정식적으로 학생을 모집했다. 목회자 재교육을 위한 과정으로 목회자들이 지원할 수 있었으며 신학대학원(M.Div)와 똑같은 커리큘럼이었다. 다만 주간과정이 아닌 야간과정이었으며 초기에는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목회대학원은 1998년 신학대학원에 통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학생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신학대학원의 전문성을 더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특히 목회자들에게 99학점 이수는 버거웠다는 평가였다. 목회대학원의 통합으로 6개 대학원은 5개 대학원으로 재편되었으며 신학대학원은 목회학과와 신학과로 세분되었다. 목회학과는 신학관련 학부 졸업자를, 신학과는 일반학과 출신자를 전형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선거정책토론회 폐지돼
지역총회별 정책토론회로 시작

선거정책토론회는 2004년 5월 20일 총회 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서대전교회에서 처음 열렸다. 공동선거운동의 한 형태로 제98년차 총회임원 선거부터 시작된 선거정책토론회는 입후보자들이 자신의 소신을 대의원들에게 밝히고, 대의원들은 후보자의 의견과 정책을 듣고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해 시행되어 8년간 유지되다 2010년 제105년차 총회에서 폐지됐다.

총회 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해 지역총회별로 진행된 선거정책토론회는 대의원들의 큰 관심을 끌었으며, 대의원들 사이에서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제105년차 총회에서 선관위 운영규정이 개정되어 선거운동 기간이 45일에서 15일로 단축되고 선거 운동원제도가 폐지되는 등 선거운동 형태가 크게 변화하면서 이 때 선거정책 토론회가 시행 8년 만에 폐지되었다.

 

‘서울강북지방회’ 해산
2005년 10월 대의원 투표로 결정

서울강북지방회는 2005년 10월 11일 해산됐다. 이날 총회 임원회의 결의에 따라 소집된 서울강북지방회 소속 대의원들은 투표를 통해 지방회 해산을 결정했다.

서울강북지방회는 당시 폭력 및 소송 사건 등의 분쟁이 계속된었고, 지방회 내 2명의 목사가 파직됐는데 정기지방회에서 파직된 목사를 지방회장으로 선출하면서 갈등이 증폭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서울강북지방회는 교단 총회에서 ‘사고지방회’로 규정돼 총회 대의원권을 부여받지 못했으며 7개월 간의 행정공백 사태를 맞아야 했다.

이에 총회임원회는 지방회 해산안과 새 임원 선출 등의 의견을 담은 존속안을 놓고 10월 지방회 대의원 투표를 진행하여 최종 해산을 결정한 것이다. 당시 서울강북지방 소속 12개 교회는 서울중앙지방회로, 일부는 서울북지방회로 복귀했다.

 

십자군전도대 역사의 뒤안길로
직업전도 교단 개척 사역 지원 펼쳐

미자립교회 지원과 전도에 힘써왔던 한국 십자군전도대가 5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53년 한국전쟁 이후 교단 재건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던 한국십자군전도대는 2009년 3월 말로 사역이 종료됐다. 그동안 교단의 직접 전도 전통을 계승하면서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의 사역을 지원했던 십자군전도대는 국제십자군에서 한국 사역에 대한 비중을 줄이고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사역을 확장하면서 한국 지원을 중단하게 돼 사역을 끝맺게 됐다.

한국십자군전도대는 1953년 한국전쟁 후 무너진 교회를 복원하고 교단을 재건하기 위해 OMS의 지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56년 동안 전도의 선봉에서 복음전파의 사역을 감당해 왔다. 십자군전도대는 교단의 재건과 개척지원, 작은교회 지원 등 성결교회 부흥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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