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100주년/여성안수 시행/지역총회 창립·폐지

▲ 교단창립 100주년 기념대회가 2007년 5월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10만 명의 성결인들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교단 100주년 맞아 기념대회 개최
성결인 10만 명 한자리에

2007년은 한국성결교회 창립 100주년의 해였다. 교단 창립일인 5월 27일,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선교 2세기를 기대하며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 전국의 성결인 10만여 명이 모인  성결교회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최북단 거진에서 최남단 제주까지 3000교회에서 모인 10만 여명의 성결인들은 성결교회의 저력을 보여줬다.

교단은 새로운 100년을 향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5년에 걸쳐 100주년 사업을 준비하며 2002년부터 성결교회 선교2세기를 향한 100주년 특별사업을 다채롭게 벌였다. 먼저 ‘3000교회 100만 성결인’을 목표로 삼고 전도운동에 매진했다. 교단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각 지역별로 100주년 기념교회를 개척하는 등 300여 개 교회를 새롭게 세웠다.

평신도단체들은 2005년 평신도전도대회를 통해 ‘태신자 30만 명’을 하나님께 봉헌하고 성결교회 교육목회제도인 BCM을 개발해 신앙교육에 새 장을 열었다. 교단의 역사와 신학을 재정립해 교단 100년사를 편찬하는 등 성결교회 2세기의 기틀을 다지고 새로운 비전도 제시했다. 또한 사랑의장기기증서약식 등 생명나눔운동에 1만 명 이상 참여하여 섬김에도 앞장섰다. ‘100주년 기념음악회’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으며, 세계선교대회와 성결교회 교육의 미래를 제시하는 교육대회도 열렸다.      

 

▲ 2004년 제98년차 총회에서 여성안수제 시행이 결의된 순간 본 교단 여성들이 환호하는 모습.

   여성 목사·장로 안수 시행
압도적인 지지로 제98년차 총회 통과

2004년 제98년차 총회에서 여성 목사·장로 안수가 전격 통과됐다. 교단 여성들의 숙원이었던 여성안수는 표결에서 2/3이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으며, 대의원들은 기립박수로 여성안수 통과를 축하했다. 여성안수 통과는 여성안수추진위윈회가 발족한지 10년 만의 쾌거로 여성 목사와 장로 안수가 함께 통과되어 더욱 의미가 컸다. 또한 본 교단 여성안수 통과에 앞서 4월에 예성에서도 여성목사 안수가 통과되고 제25회 미주총회에서도 여성군목 안수가 통과됐다.

교단 첫 여성 목사는 이듬해인 2005년 3월 교단 창립 98년 만에 배출되었다. 1기 여성목사는 총 37명이 배출되었으며, 올해까지 지난 10년간 교단에서 안수 받은 여성목사는 185명에 이른다. 여성안수 시행으로 여성 목사들도 ‘축도’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주일 예배 설교’를 맡거나 담임목사로 청빙받는 사례도 생기는 등 여성목회자의 활동 폭이 확대된 점은 큰 변화로 손꼽히고 있다.

현재 전국에 60여 명 이상 여성 장로가 탄행했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2008년 제102년차 총회에는 최초로 여성 대의원이 참석해 주목받았다. 김병순 장로가 1호 여성대의원의 기록을 남겼다. 제104년차 총회에는 해외직할지방회 대의원으로 이금호 목사가 첫  여성 대의원으로 참석했다.

 

▲ 호남지역총회 창립식

지역총회 창립 및 폐지
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지역총회는 1995년 창립해 2009년 폐지됐다.

지역총회 창립은 제89년차 총회에서 결의되었다. 이듬해 4월 서울지역을 비롯해 경인, 중부, 충청, 호남, 영남 등 총 6개 지역총회가 창립되었고 목사안수를 주관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지역총회는 고른 지역선교 발전과 인사적체 해소의  대안으로 큰 기대를 받았다. 지역교회 창립은 교단 총회 일정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교단 총회는 4월에 개최되었지만 지역총회가 생기면서 9월로 옮겨진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지역총회는 결의 이듬해인 1996년부터 폐지안이 논의되는 등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대부분의 선거가 단독 입후보 등록과 무투표 당선으로 나눠 먹기식 임원선출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방대한 조직에 비해 부여된 권한이 적다는  불만도 많았다. 지역총회 활성화를 위해서는 총회본부 기구 일부가 이양되어야 했지만 당시 헌법으로는 불가능했던 점 등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결국 지역총회는 시행 9년만인 2004년 제98년차 총회에서 폐지되었다. 당시 폐지 이유로 지방회의 역할이 축소된 점, 총회 업무 이관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 지방회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분석되었다. 지역총회 폐지 후 6월에 개최해 오다가 2009년 제104년차 총회부터 교단 총회 일정도 6월에서 5월로 바뀌게 되었다.

▲ 1998년 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제2회 영적대각성 구국금식성회 및 성결인대회
 

 국가위기 극복 위한 성결인대회
IMF로 절망에 빠진 국민 위로

IMF 외환위기로 절망에 빠진 대한민국을 위해서 성결인들은 금식 회개 기도운동을 벌였다.

1998년 3월 25일 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제2회 영적대각성 구국금식성회 및 성결인대회는 성결인들의 영적 각성과 대사회적 책임감을 높인 행사였다.

전국 단위 행사로 처음 개최된 이날 성결인대회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성결인 3만 명이 모여 외환위기로 상실감에 빠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뜨겁게 금식 기도했다.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할 힘은 회개와 성결성 회복에 있다는 믿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서 기도한 것이다.
이날 실천 항목은 ‘국난 극복과 민족통일을 위하여 기도하기’, ‘교회갱신을 위한 회개 운동’, ‘ 분쟁 지양, 화해와 일치 위한 노력’, ‘소외된 이웃 위해 사랑과 봉사 실천’, ‘세계선교와 인류평화 위한 노력’, ‘창조 질서지키고 자연환경 보전하기’가 포함됐다.

특히 이날 성결인대회는 구국성회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감을 높인 행사로 평가받는다. 당시 금모으기 운동처럼 행사 현장에서 대대적인 헌혈운동, 옷 모으기 캠페인을 펼쳐 나라 살리기 기금을 마련했으며, 헌금 전액(2억4000만 원)은 실직자 기금으로 정부와 교단 복지 기관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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