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3:1~15)

이승현 목사(전북중앙지방∙명성교회)
섬김의 과정은 어렵지만 그 열매는 보람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기쁨을 줍니다.
한 여인의 옥합을 깨트리는 섬김과 헌신은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하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그 여자의 이름도 전파되는 복을 누리게 했습니다(막 14:1~9).

다비다의 구제와 헌신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하나님께 기억되어 죽었다가 사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행 9:36~43). 섬김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늘의 상급이 약속된 신앙의 소중한 요소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 이른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시던 중에 웃옷을 벗으셨습니다. 그리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신 후 대야에 물을 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 사건은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기를 갈망하는 성도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 13:1).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배신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잡히실 때 모두 도망갈 것을 아셨습니다. 베드로의 부인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을 팔아넘길 가롯 유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눈물을 삼키시며 발을 씻기는 특별한 사랑에 감동받고 돌이키기를 기대하시며 발을 씻기셨습니다.

오래 참으신 사랑, 모든 것을 견디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일은 예수님을 닮고자 갈망하는 성도들이 실천해야 할 몫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온 주인의 발을 종들이 씻겨주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는데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 천박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제자들을 천하보다도 더 귀한 존재로 섬겨주신 것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만큼 소중한 존재로 보신 것입니다.

사람을 소유나 지식, 지위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영혼을 위해 죽으신 소중한 존재로 이웃을 섬겨주는 것은 교회가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자신의 발을 씻기는 것을 거절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요 13:8)고 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를 구원받은 사람으로 해석한다면 더럽혀진 발은 허물과 죄로 가득한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와 허물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벽을 쌓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을 그 거룩하신 보혈로 씻어주시고 용서하시고 용납해 주실 때 우리는 주님과 신령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배우자나 친구보다도 스마트폰과 대화하는 시간이 가장 길다고 합니다. 수많은 정보들을 답습하고 평가하고 판단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분석한 정보로 선택한 자기주장만이 가장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들의 마음을 움직여 복음으로 돌아서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요13:12) 묻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게 하는 성경적인 방법은 바로 ‘예수님이 나에게 행한 것같이 나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요 13:15).

예수님처럼 살기를 열망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내면의 깊은 상처와 마음과 정신의 온갖 종류의 질병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발을 씻겨주는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말씀이 실천될 때 교회와 성도는 시대의 등불이요 소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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