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우 목사(서울서지방∙로고스교회)
한국갤럽의 ‘종교단체, 종교인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품위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성직자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개신교인 비율이 85%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조사를 할 때마다 상승하고 있으며 개신교회 마이너스 성장의 요인으로 이해된다.

결과를 두고 생각할 때 성직자의 수준이 낮아지고 개신교인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것이라면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일반적으로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을 따를 수 없다. 따른다 할지라도 영혼 없는 순종, 의미 없는 동행일 뿐이다.

달라스 윌라드는 ‘마음의 혁신’에서 십계명의 제3계명부터 계명 위반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했다.

십계명의 출처와 의미, 가치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십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십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감정통제가 필수이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의식혁명’에서 ‘의식지도’를 발표했다. 사람의 의식을 수치로 표현했다는 반론도 귀담아 들으며 그의 연구를 참고하자. 호킨스는 사람마다 의식 상태가 있는데 이는 감정 상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였다.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에너지로 ‘피해의식’이 있다. 하위 감정은 굴욕에서 비난, 절망, 후회, 근심, 갈망, 미움, 경멸로 이어진다.

상위 의식은 ‘주인의식’으로 긍정으로 시작해서 신뢰, 낙관, 용서, 이해, 존경, 고요함, 축복, 언어 이전의 상태라고 한다.

우리의 감정은 사람과 상황의 공격을 받는다. 공격받는 상황과 사람이 많아진다면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지만 보편적인 공격인지 특별한 공격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보편적인 공격은 받아낼 체력과 실력이 준비되어 있다면 별것 아니다. 특별한 공격은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집요하고 비상식적인 경우일 때가 많다.

사순절 묵상을 준비하며 로고스교회 개척 18년을 뒤돌아 보았다. 굴욕적인 감정으로 출발해서 비난, 절망, 근심, 경멸의 과정을 다 겪었다. 지워버리고 싶은 감정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떠날 때였다. 떠나면서 공동체를 힘들게 할 때 더욱 그랬다.

지금만 같아도 보편적인 일로 받아들일 텐데 그땐 특별하게 이해되어서 힘들었다. 혹독한 영적인 훈련의 열매는 평화였다. 보편적인 현상을 특별화의 오류에 넣지 않으면서부터 평화는 찾아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지방회, 총회 등에 참석하다 보니 감정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 메타인지가 뛰어난 사람은 모르는 것을 겸손히 아는데, 모르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교회와 자기 생각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움직이려 하는 사람도 있다. 공동체를 향한 폭력적인 언어도 거침없이 표현하는 분들도 있다.

권력을 가진 자의 자기중심성을 넘어선 독단도 보았다. 그 순간마다 조용히 설교준비하며 한 교회의 목사로 숨어 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땅 끝을 향하고 있다. 예수님의 관심은 우주적 교회라는 것도 알고 있다. 숨을 수 없다. 신중하고 적절하게, 지혜롭고 정직하게 맞서야 한다.

최근 법정에서 ‘고스톱’을 놀이로 보느냐 도박으로 보느냐의 기준을 ‘마음의 동기’와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서 판결하고 있다.

지방회나 총회를 위해 똑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마음의 동기를 살피신다. 명예가 아닌 섬김, 무질서가 아닌 질서, 비본질이 아닌 본질을 구하고 있는지 오늘도 묻고 계신다.

무시당함, 분노, 절망, 근심 등의 감정이 우리를 초대할 때 상황, 언어, 사람, 현재에 집중하기 쉽다. 우리의 ‘감정의 배후 세력’을 확인하고 뿌리를 찾아 기도해야 한다.

기도 중의 기도는 금식기도이다. 감정의 구원을 위한 금식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야망, 욕망, 더러움 등을 이기기 위한 금식이다.

다음으로 십자가 앞에 홀로 있는 시간이다. 주님 앞에 고독하게 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런 저런 감정적인 혼란이 찾아오면 금식에 이어 잠적이나 고립이 아닌 고독을 선택한다.

다음으로 예배 인도자가 아니라 예배자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 마지막으로 경건한 분들을 찾고 그들과의 시간을 함께한다. 거룩함은 구별됨인데 사람의 구별도 필요하다.

앞으로 사순절을 약 20회 보내고 나면 은퇴를 할 것이다. 그때까지 수많은 감정적인 도전과 공격을 받을 것이다.

결정적인 실수와 죄를 범하지 않고 싶다는 작은 바람에서 온전함을 추구하는 담대한 목표도 세웠다. 피해의식이 아닌 주인 의식으로, 노예 근성이 아닌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 교회, 세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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