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근 장로(광주동지방∙학동교회)
신약성경 누가복음(15:11~32)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그 초점이 방탕한 생활에서 돌아온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기쁨과 관서에 맞추어져 있고 또 그 아버지의 관서를 극대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맏아들’의 등장이다.

해밀턴은 탕자의 비유를 “퍽 힘 있는 간결한 수법으로 단일한 효과를 독자에게 주는 훌륭한 근대 단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탕자의 비유는 문학적 관점에서 접근할 때 맏아들을 등장시킨 이유와 비유의 초점이 좀더 명료해진다.

다시 말하면 이야기는 탕자의 돌아옴에서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아버지를 위해 봉사한 착한 맏아들이 등장함으로써 자연히 탕자와 대조되어 탕자의 나쁜 행위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고, 탕자의 나쁜 행위가 두드러져 보일수록 아버지의 너그러운 용서가 더욱 더 커 보이게 되었다.

맏아들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요 필연이다. 이야기의 들머리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11절)에서 이미 맏아들의 등장은 예정돼 있었다.

예수께서 탕자 이야기를 창작하실 때 제3의 인물인 맏아들을 등장시킨 구성이야말로 놀라운 기법이 아닐 수 없다.

이야기의 절정을 이룬, 아버지가 맏아들을 타이르는 말을 살펴보자.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에서 특히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의 이 말 속에는 오히려 맏아들이 오랫동안 아버지를 위해 봉사한 의를 인정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보상까지 언급하며 맏아들이 섭섭해함을 안타깝게 여기고 달래는 곡진한 애정이 묻어나 있다. 그것은 책망이 아니라 위로였다.

탕자의 비유에서 돌아온 탕자를 그토록 기뻐하고 관서한 아버지의 성격의 미를 클로즈업한 것은 맏아들 효과로 볼 수 있다.

그런 맏아들을 자기의 의를 내세우며 동생을 시기하는 형으로만 비판하는 강단들 때문에 맏아들은 억울하고 비유의 초점 또한 흐려지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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