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주제란 어떤 것인가?

손동식 목사(하저교회∙런던신학대학 설교학 박사)

설교자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주제에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설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주제가 좋은 주제인가? 무엇보다도 좋은 주제란 성경 본문에 철저하게 기반을 둔 주제이다.

어떤 설교자는 이미 정해놓은 자신의 주제를 전하기 위해 본문을 그저 들러리로 인용하곤 한다. 어떤 설교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성경 본문이 말하는 바와 전혀 다른 내용을 설교하곤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성경 본문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이러한 설교는 종국적으로 강단과 설교자의 권위를 상실하게 만든다.

런던에서의 유학시절, 필자의 가족은 런던 북부의 이매뉴얼(Emmanuel) 교회에 출석하였다. 그 교회는 마이크 탤벗(M. Talbot) 담임목사가 신실하게 목회하는, 지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교회였다.

필자가 그곳에서의 교회 생활 중 잊지 못하는 기억 중 한 가지는 그 교회에 갓 부임한 30대 초반의 여교역자, 조애너 제임스(J. James)에 대한 기억이다.

그 젊은 여교역자가 그 교회에서 처음으로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올랐을 때 회중석에서는 새로운 목회자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연소함에 따른 약간의 냉소가 감돌았다.

그러나 그녀가 강단에 올라 말씀을 강해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중석에는 이름 모를 권위와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것은 그녀의 설교단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녀의 설교를 듣던 모든 회중은 직관적으로 그녀가 그녀의 연소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신실하게 강해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직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애너의 설교 속에 흐르는 권위는 회중으로 하여금 설교 내내 조애너의 말을 더욱 청종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많은 회중은 그녀가 전하는 설교의 내용을 ‘겸손히’ 노트에 필기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필자에게 바로 그 전날 케직(Keswick)에서 고별 설교를 했던 존 스톳(J. Stott)의 한 가지 설교 정의가 스쳐지나갔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될 때, 그리고 회중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차릴 때,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엄숙한 경외심과 즐거운 경이감으로 엎드려 경배한다.”

조애너의 설교는 문자 그대로 ‘본문에 의한, 본문을 위한, 본문에 기반을 둔’ 설교였다.

비록 본문의 중심 주제를 파악하는 일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성경적인 설교자는 본문의 광맥이 드러나기까지 인내 가운데 본문을 파내는 작업을 멈춰서는 안 된다. 스톳은 그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 준비할 때 중심 주제가 드러나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훈련을 무시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도와 묵상을 통해 본문 속으로 깊이, 아니 본문의 심연까지 들어가야 한다. …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의 마음에 열정을 일으키며, 우리의 설교를 다스리며, 청중에게 사라지지 않는 감동을 남길 것이다.”

성경 본문에 기반을 둔 이러한 핵심 주제의 선포는 무엇보다 설교자의 권위를 확보해 준다. 또한 설교자로 하여금 자신이 전하는 설교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 가운데 회중에게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도록 한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의 이야기는 이를 위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언젠가 휫필드는 설교 때마다 항상 조는 버릇이 있는 한 사람을 주목하며 이렇게 자신의 설교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만약 제가 조지 휫필드의 이름으로 여러분께 설교하러 왔다면 여러분은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손에 기댄 채 잠을 청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제가 만군의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왔다면(손으로 강단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내 말은 ‘들려져야’ 하고 또 ‘들려질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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