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우리와 다름없는 이웃이에요”
힘겨운 이웃 상처 보듬고 치유하는 약사 이모

속칭 ‘텍사스’로 불리는 서울 미아리 집창촌의 겨울은 다른 동네보다 일찍 오고 더 아프게 온다. 외딴 섬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취급되면서 세상살이가 겨우 살이 만큼 매섭게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골목에서 ‘건강한 약국’이라는 이름의 약국을 운영해온 약사 이미선 집사(한성교회·사진)는 어려운 이웃의 아픔을 돌보고 치유하는 ‘이모 약사’로 통한다. 성탄절을 맞아 동네 교회에 서 있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그녀도 누군가의 그늘진 인생을 밝히는 삶을 살고 있다.

인근 집창촌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이모나 언니처럼 편견이나 동정심 없이 대하는 그녀의 약국은 이 골목의 사랑방과 같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약국에 들러 피로회복제를 마시면서 고단했던 하루를 이야기를 나눈다.

어린 시절 미아리의 집창촌 ‘언니’들과 함께 놀았던 그녀는 약사가 된 이후 어두운 고향을 외면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따뜻한 동네였지만 결혼 후 다시 찾은 동네는 삭막하다 못해 음산했다. 재개발을 기다리며 낡은 건물을 방치하자 어느새 가난한 동네가 됐다. 특히 홀몸노인과 집창촌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그렇다보니 점점 사람들이 찾지 않는 가슴 아픈 동네가 됐다.

이 집사 역시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약국을 열고 지역 주민들의 삶 속에 들어가자 두려움은 애정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섬김이 시작됐다. 할머니들에게는 한글을 가르쳤으며 집창촌 여성들에게는 ‘동네 이모’가 돼 성교육을 하고 상담을 했다. 노숙인, 홀몸노인, 집창촌 여성 등 소외된 이들은 그녀에게 눈물겨운 인생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하늘 아래 벌어지는 일도 아니었다.

이 집사는 “‘미아리 텍사스’는 어딘가 아주 먼 곳에 있는 다른 동네가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와 다름없는 이웃동네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이렇게 나눔에 열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8년 전 하나님을 뜨겁게 만난 후 달라졌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면서 원망과 저주는 사라지고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과 마주하게 됐다.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미아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미선 집사. 그녀는 이곳에 복음이 더 절실한 사람들이 많다며 전도하는 발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섬김이 전해지자 돕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남대문 도매상 주인이 건넨 속옷이나 양말은 지역 주민이나 어려운 복지시설에 전했고, 이름모를 섬김이가 전한 30만 원은 착한 가게 빵집에서 빵을 구입해 노숙자 급식 사역을 하는 바하밥집과 미자립교회에 전달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연스럽게 나눔 통로가 됐다.

이 집사는 여기서 일하는 ‘반짝 이모’로부터 이런 소릴 들은 적 있다고 했다. “아무도 나에게 교회 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약사 이모가 나 좀 교회로 데려가 줄래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미선 집사는 자신의 이기심과 무심함을 반성했다. 그러면서 교회와 기독인들에게 간절한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미아리로 전도 나오라는 것이다.

“이곳으로 전도하러 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여기 일하는 아가씨들 중에 팔목에 자살시도 흔적(주저흔)이 없는 사람이 없답니다. 하나님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미아리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그녀가 이곳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자, 성(聖)속에 갇혀 있는 교회에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다. 아버지 하나님도 바로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이 집사는 이곳에 있는 이웃과 함께 오래오래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소원이다. 그녀의 이러한 마음은 분명 추운 연말을 더 따듯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