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은 아무리 생각해도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비록 사무엘 선지자를 만났을 때 자신은 이스라엘에서도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에 속해 있고 자기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다고 낮추어서 말을 했지만 베냐민 지파가 어떤 지파인가?

야곱이 마지막으로 열두 아들들에 대한 예언을 해주는데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창 49:27)고 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용맹스러웠다. 모든 싸움에서 비겁하게 뒤로 물러서지 않고 가장 앞장서서 싸웠다.

베냐민 지파의 청년 사울은 용모가 준수했고 그의 아버지는 남부럽지 않은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 거기에 사울은 아버지를 근심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좋은 아들이었다. 그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도 모두의 우려를 씻고 모든 백성들이 추대하는 자연스러운 형식을 취했으니 그처럼 모범적으로 시작한 왕은 보기 드물 것이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승승장구했다. 용맹하고 좋은 신하들을 만났으며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선지자 사무엘을 곁에 두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지키려고 애쓰기 시작하였다. 왕으로서의 명예와 권세에 집착했다.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는 것임에도 애써 승리를 만들어 내려고 하였다. 나중에는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것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그런 가운데 만난 다윗은 사울의 최대 정적이었다. 사울이 처음 다윗을 보았을 때는 너무 어려서 전쟁에 나오지도 못할 정도의 소년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장수들 중에 아무도 상대하지 못했던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그것도 작은 물매에 달아 던진 돌로 쓰러뜨렸다.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모두가 다윗을 좋아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사울의 마음에는 다윗을 미워하는 감정이 가득했다. 다윗을 사위로 삼아 자기 편을 만들려고 하였고 싸움이 맹렬한 전쟁터에 책임자로 보내 전사하기를 은근히 바랐지만 문제는 다윗의 태도가 아니라 그의 안에 있던 명예와 권세에 대한 탐욕이었다.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다윗은 자신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생명을 해치지 않았다. 그것도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이다. 자존심도 상했지만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서 다윗의 이름을 부르며 미안하다고 사과하였으나 다윗은 사울 곁으로 돌아오기에는 너무 멀리 가버리고 말았다. 사울의 닫힌 마음을 열 사람이 없었기에 이제 사울을 떠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인사를 하고 떠나는 대목을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다윗은 당연히 집이 없다. 그래서 그는 그냥 자기가 가던 길로 갔다. 그런데 그 길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길’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길이라면 문제없다. 한편 사울도 돌아갔는데 ‘자기가 있던 곳’ 즉 집(home)으로 갔다. 그곳은 탐욕이 빚어낸 자기만의 성이었기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이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주와 함께 가는 ‘길’인가? 혹시 내 방식대로 고집하면서 지은 고립된 나만의 ‘곳’(집, ho me)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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