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관계는 연속성 가운데 존재한다. 옛 언약은 새 언약인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해서 완벽하게 성취된다. 마태복음은 그것을 족보(族譜)로, 마가복음은 복음의 시작이라는 장엄한 서두로,  누가는 내러티브라는 아름다운 문학성을 가미한 서사(敍事) 이야기로, 그리고 요한은 하나님의 창조 이전부터 함께하신 분의 성육신 사건으로 기막히게 묘사한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의 탄생과 사역, 그 중에서도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에서 핵심 사건임을 폭로한다. 사순절 기간을 순례자로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사건이 갖는 역사적 사실과 그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에 옷깃을 여미는 겸허함과 예수의 제자로 동참하는 열의를 보여야 한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의 사순절(Lent)을 맞을 때마다 어떻게 하면 성결하게 지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을까 고심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찾아온 생각은 혼돈과 어둠이 주종을 이뤘다. 아무리 궁리해도 경건한 수도사나 수행자처럼 잦은 금식과 금욕의 실천으로 일상성을 차단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문뜩 찾아온 해법은 빛을 찾아 떠나보자는 것, 즉 누가처럼 여행의 모티프를 실제 생활에 적용해 보는 것이었다.

내 삶이 어둠이라면 이것을 해결할 방도를 찾아보려는 용기라고 해야 맞는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을 빛이라고 공개한다. 빛은 많은 은유를 포함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사역(창 1:3) 그리고 예수의 자기선언(요 8:12)에서 동일하게 새로운 세계를 여는 기능을 수행한다.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 침묵하거나 답답해하지 않으시고 빛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감행했고, 예수는 빛의 선언을 통해 자기의 구원행동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밝혀 주었다.

요한복음에서 빛이신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인 남성에게 광명을 제공했다(9:1~12). 이 장면은 치유자로서 예수의 정체를 환하게 보여준다. 빛이 어둠 속에 갇힌 자를 해방시킨 것이다. 빛과 함께 있으니 어둠이 자연스레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온통 어둠뿐이니 작은 문제가 아니다.

어둠에 갇혀 버린 이성은 안타깝게도 그것을 해결할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신앙의 거인들이 사라지니 빛도 다 쇠잔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만큼 현대사회에서는 존경과 칭송의 대상을 찾기가 점점 힘겨워지고 있다. 현실 자체가 어둠 속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세상은 실제로 어둡다. 그래서 예수는 이것을 밝게 하려고 한다. 이 어둠은 인간의 힘으로 제거되지 않기에 그렇다. 약간의 밝음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결코 환하게 만들 수 없다.

인간의 사고방식에는 모든 것을 제어하고 독점하는 못된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바벨탑 사건에서 그러한 행태는 이미 범죄와 같은 것으로 낙인찍혔지만 인간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자기중심주의에 중독되어 하나님 앞에서 우쭐댄다. 그러나 성서는 이와는 반대논리를 제시한다. 인간의 제한성과 하나님의 무한대성 사이를 제대로 읽어내라고 초청한다. 죄를 지었으므로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우겨대는 것처럼 사람들의 관례적인 사고방식은 주변을 헷갈리게 만든다. 사실 착한 일을 하는데도 생활이 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개차반(개가 먹는 음식인 똥을 지칭, 못된 인간을 함의함) 생활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잘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그거 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혼돈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예수의 치유는 생명을 온전하게 회복시켜 새로운 존재로 만든다. 선입견과 전제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혼돈은 여기서 더 극심해진다.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으니 과거에 앞을 못 보던 사람일 거라고는 인정할 수 없었다.

예수의 치유행동은 장애로 고통받던 남성을 변화시켰는데도 사람들은 그가 온전해진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와 회복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전통과 관습적 사고에 빠져 살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변화는 한낱 신화에 불과했다. 그러나 예수는 불가능성을 가능한 실체로 만들어 냈다. 그러니 현재의 삶이 어둡고 컴컴하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 그분의 새로운 창조가 나를 새롭게 만들어갈 테니 말이다.

사순절은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분이 누구인지 그분을 찾아나서는 여행기간이다. 그러니 다른 곳을 헤매지 말고 성서의 골목을 열심히 뒤적이면서 그분을 찾고 또한 만나야 한다. 빛이신 분과 함께 걷는 사순절은 상상만으로도 행복을 만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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