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한국 사람들의 정서를 파헤쳐 기막힌 글을 써대던 ‘이규태’는 한국인의 의식구조가 서양과 다른 점을 가옥 구조에서도 밝혀 낸 바 있다.

서양의 가옥구조는 외부 울타리가 허술한 반면 내부에 들어오면 개인의 방이 두껍게 단절된 구조라고 파악했다. 반대로 한국 가옥 구조는 외부와 구별 짓는 담장은 육중하달 만큼 튼실한데 일단 내부로 들어오면 개인의 공간을 단절 짓는 것은 알량한 창호지 한 장뿐이니 ‘체면 단절’이라는 표현을 썼다. 서양과 달리 가족 간의 단절을 그만큼 줄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식구조는 역사 속에도 나타난다. 계백은 망해 가는 백제를 위해 5000명의 결사대를 뽑아 황산벌 싸움에 나선다. 그때 혹시 패전하게 되면 자신의 가족들이 적에게 치욕당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미리 가족을 죽인 다음 출전했다. 내가 각오한 죽음의 결의가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처연하게 남기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이 시대의 숨은 단면이다. 그녀들의 삶의 전장(戰場)이었던 송파가 옛 백제 땅이어서일까 그 사건의 이면에 계백 장군이 함께 숨쉬고 있는 모습을 본다. 매우 그릇된 가치의 한국적인 죽음이다. 안타깝게도 그 뉴스가 발표되자 잇달아 생활고로 인한 가족 단위의 자살 소식이 들린다. 다시 말을 가다듬지만 주로 ‘가족 단위의 자살’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은 정부와 그 복지정책을 질타한다. 화풀이로 받아두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앙증맞게 남기고 떠난 착한 세 모녀를 대하는 착한 시민들의 미안한 변명과 화풀이를 거기 말고 어디다 해댈 것인가.

오래된 말의 지혜는 묵직하다. ‘가난은 나랏님도 못 말린다’고 했다. 세상의 가난이 복지정책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판정을 오래전에 내린 셈이다. 가난한 이들의 가장 중요한 응원군이신 예수님도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막 14:7) 하심으로 경제 발전, 복지 정책에 상관없이 가난한 자들을 우리 곁에 머물러 두셨다.

이 시대에 교회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문제의 해답으로 들고 고민해 보자. 주님이 그들을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사실을 안다면 교회는 스스로 내가 그 화풀이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으며 상실된 자유를 찾겠다는 민주화 논쟁, 이념 지향적 사회 운동은 낡은 것이다. 돌아서서 세상의 필요에 대한 실제적인 수여자로서의 교회가 되기를 애쓰고 있는 중이다. 그간의 교회가 사회 복지적 저인망 시스템 역할을 담당해 온 점은 지난 정부에서 복지부 장관을 지낸 인사의 고백으로도 확인 된 바가 있다. 그 일이 교회의 본질이 되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양산된 교회 수에 반비례해서 열악해지는 교회 재정의 건전성을 회복하는 일이 함께 해결해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교회의 됨됨이에 관한 것이다.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교회 역할의 또 다른 면이다. 생명의 구원선인 교회가 현재 교회의 난립으로 생존 경쟁 시장에 내동댕이쳐져서 생명을 구원하기는커녕 자기 생존을 위해 숨을 헐떡이고 있다. 그 안에 포함된 더 작은 단위의 교회인 가정들이 똑 같은 모습이다.

‘계백의 가족관’을 갖고 있는 이 땅에 천국 가정의 복음을 전해온 지가 130년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생활고를 비관한 가족 집단 자살이라는 실패 증명 보고서를 받아들고 있다. 우리 보다 더 가난한 나라, 복음도 없고 복지 정책의 개념도 없는 나라들에서도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단적으로 국가의 실패가 아니다. 교회와 복음의 실패다. 기왕에 우리 곁에 있어야 할 가난이다. 복음이 가난을 풍요로 바꿔주는 요술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 가난을 견딜 수 있는 길 안내이다. 더불어 가족의 생명이 내 무한책임 아래 있다는 그릇된 생명 사상, 계백 정신을 갱신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배가 물 위에서 효용 있듯 교회는 사회 안에 있어야 한다. 산중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는 교회가 아니라 수도원이다. 교회는 세상을 그 존재의 기초로 삼는 만큼 정부와 복지정책을 대신해서 무한 책임을 질 각오로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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