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 비판적 도전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제자들은 
이후 목숨걸고 예수 부활을 증거했다
거짓을 위해 목숨을 버릴 사람은 없다
역사상 부활을 부인하는 도전은 모두 실패
부활의 증거를 압도하는 반대이론은 없다

예전에 미국에서 부활절을 한 주 남겨두고 ‘예수 부활’에 대한 TV 토론회가 있었다. 기독교 철학자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와 영국 성공회 감독을 지냈던 존 쉘비 스퐁(John Shelby Spong)이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했는가?’라는 주제로 논쟁을 벌였다. 이 토론회는 위성 TV를 통해서 미 전역에 방송되었다. 

크레이그 박사는 예수는 실제로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주장했고, 스퐁 박사는 예수의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제자들의 마음 속에 예수의 정신이 부활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토론회는 미국의 교계에서 한동안 화젯거리가 되었다.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강력한 도전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비판하는 몇 가지 도전을 살펴봄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예수 부활 사건은 신화 이전에 기록돼

예수 부활을 부인하는 첫 번째 도전은 ‘예수의 부활은 신화나 전설이다’라는 것이다. 한때, 예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신화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온당치 않으며 타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다. 오히려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한 기록을 믿을만한 정당한 이유가 더 많다. 예수 부활 사건을 기록한 신약성경은 어떤 사건이 신화나 전설로 발전되기 이전의 기록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설이나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신화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세대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신으로 그리스-로마 역사 연구에 명망있는 A. N. 셔윈-화이트(Sherwin-White)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구전되어 역사적 진실을 뛰어넘어 전설적인 경향성을 보이게 되는 데는, 심지어 두 세대도 너무나 짧은 기간이다”라고 말한다. 셔윈-화이트에 의하면, 지금까지 그리스-희랍 신화와 역사 속에서 60년 이내에 어떤 사건이 전설이나 신화로 발전된 증거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록한 기록물은 예수의 죽음 이후에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났을 때 기록되었는가? 복음서는 길게 잡아도 예수의 죽음 이후 30년에서 60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또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록한 바울의 기록은 예수의 죽음 이후 18년에서 35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신화가 발생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연구를 토대로, 셔윈 화이트는 ‘역사를 통해서 복음서의 내용을 그토록 빠르게 완전히 왜곡시킬 정도로 전설이 발전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하였다. 또한, 19세기 독일의 신학자 율리우스 뮐러가 회의주의 학자들을 향해, 만일 복음서의 기록이 신화화되었다면, 역사상 어딘가에 전설이 그렇게 빨리 발달한 단 한 가지 사례라도 찾아보라고 도전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그의 도전에 응답한 학자는 없다. 따라서, 성경에 나타난 예수 부활에 대한 기록을 신화나 전설로 치부할 타당한 근거가 없다.  

 

부활 사건은 과학적 사고보다 역사적 증거로 판단해야

예수 부활을 부인하는 두 번째 도전은 ‘부활을 과학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과학적 사고로 생각해 볼 때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대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 사고란 과연 어떤 사상인가를 따져 봐야 한다. 대개 많은 사람이 과학적 사고를 생각할 때 무신론적이며 진화론적 사고에 근거한 과학과 과학적 사고를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부활을 과학적 사고로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은 무신론적인 과학 사고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과학적 사고는 무신론적 입장에 근간을 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과학의 긴 역사에 있어서는 유신론적 과학적 사고가 더욱더 탄탄한 뿌리가 형성되어 있다. 원래 플라톤이 대화록에서 과학적 사고를 말할 때, 그는 신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설계와 창조 개념의 중요성을 말했다. 이러한 유신론적 사고가 신플라톤주의나 스토아 사상으로 이어졌고, 중세의 과학에서도 설계와 초자연적 이성 개입의 개념을 인정하였다. 계몽주의 시대와 근대의 과학자들도 유신론적 세계관으로 과학을 했다. 케플러, 갈릴레오, 데카르트 그리고 뉴턴도 과학에서 신의 섭리를 인정하였다. 또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수많은 서구 유명대학 과학자들은 유신론적 사고로 과학적 연구에 몰입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유신론적 과학은 오랜 과학의 역사에서 거의 항상 과학으로 인정되어 왔다.


이처럼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를 인정하는 유신론적 과학의 측면에서 볼 때, 부활의 기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부활 기적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 부활을 과학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무신론적 사고냐? 유신론적 사고냐에 따라서 그 대답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예수 부활 사건을 과학적 사고로 따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부활 사건은 역사적 증거로 판단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하겠다.

 

부활 사건은 목숨걸고 부활한 예수를 증거하게 해

예수 부활을 부인하는 세 번째 도전은, ‘예수 부활은 제자들의 마음 속에 예수의 정신이 부활한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예수 세미나를 설립한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예수를 사랑했던 제자들의 마음속에 예수의 정신이 되살아난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크로산의 주장은 몇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 첫째, 크로산의 주장은 빈 무덤의 딜레마를 설명할 수 없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둘째, 초기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고 확신하였고 그들의 증언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부활한 예수를 직접 보았다는 제자들의 주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셋째,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경험 때문에 제자들의 삶은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부활한 예수를 증거하였다. 그렇다면 부활한 예수를 실제로 만나지 않았으면서 부활 예수를 직접 만났다고 선포하면서 그 거짓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가족을 희생시킬 사람이 있겠는가? 그 누구도 거짓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지는 않는다. 그 거짓 신앙 때문에 제자들의 삶이 급격하게 변화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넷째, 그의 주장은 회의주의자들의 변화를 설명하기에 너무 부족한 주장이다. 평소에 예수를 사랑했던 제자들의 마음 속에는 예수의 가르침과 정신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의주의자 야고보와 기독교를 핍박했던 사울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예수의 죽음 이후에 갑자기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만났다고 주장하였고, 그 믿음에 헌신하여 자신의 삶을 바쳤고 순교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에 교회를 핍박했던 인물이었다. 유대교 사상에 철저히 무장된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예수의 정신이 그 마음에서 되살아날 수 있겠는가? 바울 자신의 고백처럼, 기독교인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급진적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을 위해 목숨을 버릴 사람은 없다. 심지어 테러범일지라도 자신이 하는 일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일을 자행한다. 역사상 예수 부활을 부인하는 도전들은 실패해 왔다. 

당신은 부활의 증거를 압도하는 반대 이론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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