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청성결교회와 경성성서학원 입학

겨울방학 중 새벽과 낮, 그리고 밤 부흥회에 계속 참석한 김동훈은 강사로부터 처음으로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중생하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을 듣고 놀랐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그런 설교를 듣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 말씀이 성경(요 3장)에서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여러분, 회개하시오. 철저히 회개하지 않고 중생하지 않으면 천국가지 못합니다. 회개 하시오!” 강사 목사님이 계속 외치고 외쳤다.

그러나 그는 어려서부터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별로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흥회 사흘 째 날 새벽기도회 중에 갑자기 어렸을 때부터 지은 죄가 하나 둘 생각나면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울면서 회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물로 하나님께 통회자복하고 나니, 마음이 시원하고 평화와 기쁨이 가득 찼다.

그는 새벽기도 후에 강사를 찾아 중생한 체험을 고백하고 감사했다. 그러자 강사는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기도하다 교역자의 사명이 생기면 서울 아현동에 있는 경성성서학원으로 찾아오라고 권면한 후, 그를 위해 축복기도를 해주었다.

이명직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에서 큰 은혜를 받은 그는 삶에 새로운 활기를 얻었다. 그는 수시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성경을 더욱 열심히 읽었다. 말씀의 뜻을 깊이 명상하면서 읽으니 더욱 은혜가 되었고, 설교 말씀이 그렇게 은혜로울 수 없었다. 평소 소극적이던 그가 적극적으로 변해 주일학교 교사도 자진해서 맡아 열심히 가르쳤다.

그렇게 5년 간 중학과정을 마친 1920년 봄, 그는 당장 서울로 가서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친이 기왕 교역자가 되려면 가까운 평양에 있는 장로교 신학교에 가기를 권했다. 그 때 그는 부친에게 분명하게 자기의 소신을 밝혔다.

“아버지, 제가 어려서부터 계속 교회에 다녔지만 성경에 있는 중생에 대한 설교를 한 번도 듣지 못했어요. 그런데 경성성서학원 교수이신 이명직 목사님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중생해야 한다고 해서 제가 회개하고 거듭났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성서학원에 가서 잘 배워 좋은 교역자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부친이 이명직 목사에 대해서 장로교회 목사에게 알아 본 후 동훈에게 말했다. “내가 알아보니 이명직 목사는 복음전도관 소속 목사라더라. 교회가 아닌 전도관이라 이단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 말에 그가 발끈했다. “이단이라니요? 북청읍장로교회에서 부흥강사로 초청해서 내가 큰 은혜 받았는데, 그럼, 북청장로교회가 이단 목사를 초청했단 말씀인가요?” 그의 말에 부친도 대꾸를 못하고, 경성성서학원에 진학을 허락했다.

그는 마침내 1920년 5월에 경성성서학원에 가서 시험을 치루고 입학했다. 무엇보다 면접시험이 엄했다. 즉 중생의 체험과 교역자의 사명감이 핵심이었지만, 그를 이명직 목사가 보장했다.

당시는 학력보다 신앙체험이 우선이었지만, 그는 학력도 신앙체험도 모두 우수했다. 그토록 소망하던 경성성서학원생이 된 그는 기숙사에 있으면서 엄한 생활규칙과 성경 영해, 그리고 뜨거운 기도와 길거리전도훈련을 통해 성결한 교역자로 다듬어져 갔다.

무엇보다 그는 성경의 핵심을 사중복음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교리에 놀라면서 탄복했다. 그래서 교수들의 성경강의 시간은 학생들의 “아멘”의 연속이었고, 새벽기도를 인도하는 이명직 목사의 말씀과 흰 두루마기를 입은 경건한 모습과 거룩한 행위에 감동을 받고 그를 본받기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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