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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상 목사는 1901년 경북 고령에서 출생했다. 그는 1919년 주님을 영접하여 1921년 세례받고 1926년 문남조와 결혼했다. 1934년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고 1937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오 목사가 1943년 6월 26일, 일본 아이찌겐(愛知縣) 나고야의 이웃 도시 도요하시(豊橋)교회에서 아침 기도회를 마치고 2층 서재에서 성경 읽고 있을 때였다. 요란한 구두 발소리가 나기에 내려가니 특별고등경찰과 형사들이 구인장을 제시하고 경찰서로 연행했다. 유치장 문전에서 그가 지닌 모든 끈을 압수하고 지문을 찍고 의치의 유무를 조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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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무 목 사 ( 전 본지 주필)
2023.03.1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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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부흥사, 주일학교 교육가 1952년 부산 피난신학교 신학생 가운데 주일학교에 유달리 관심 많은 이용신 김성호 오기선이 뜻을 모아 주일학교연구회를 결성했다.이들은 매주 주일학교 조직 관리, 아동 설교, 어린이 예배 지도, 교수법, 동화법, 어린이 찬송, 시청각교육, 여름성경학교 운영 등 각 분야를 연구 발표하면서 주일학교 교재의 불모지 한국에서 신학생이 거의 참여하는 큰 호응을 얻었다. 그 자료는 신학생들이 섬기는 각 교회에서 활용하여 성결교회 주일학교에 활력을 주어 각 주일학교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1950년대 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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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무 목 사 ( 전 본지 주필)
2023.03.0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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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신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나는 이제 죽으러 간다. 어머니가 가엾다.’ 머리를 풀고 우시는 어머니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환상이 펼쳐진다. “어머니, 비키세요. 불효자식은 진리를 위해 살기 때문에 이 짓밖에 다른 짓을 하지 못합니다. 어머니, 예수를 잘 믿고 나의 뒤를 따라오시오. 불효자식은 먼저 갑니다.” 이렇게 눈물로 고별하며 맨발로 서문교회 앞을 지나간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찬송이 나온다. 이제 몇 분 후에는 저 천국에 가 있을 것을 생각하니 한없이 기뻤다. 내 찬송 소리를 듣고 모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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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목사 ( 전 본지 주필)
2023.02.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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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신 집사는 며칠 동안 수차례 심문과 고문을 당한 후 한밤중에 경찰서 5호 감방에 갇히게 되었다. 죄목은 일정시대에 교원 노릇을 한 것과 어린이들에게 종교교육을 했다는 것이다. 5호 감방의 철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밖으로부터 잠겨질 때 그는 비로소 주를 위해 갇힌 몸이 된 영광스러움을 느꼈다. 마음이 평온했다. 감방에는 그의 지인 곽 목사와 송 장로가 있었다. 그들은 가죽만 남은 미라와 같은 파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화평함이 있고 옥중의 성도답게 거룩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가 앉을 곳은 변기 뚜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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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 목사 (전 본지 주필)
2023.02.0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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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가 끝난 후, 예배를 드린 후에 정치공작대원과 토론이 벌어졌다. “지금 어느 때인데 예배를 드려요?” 하고,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묻는다.“이런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지요.” 하고 대답을 했더니, “하나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시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밖에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하고 강변을 하는 것이었다.“좋소, 그렇다면 이 팔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이렇게 움직이나요?” 하고 그의 팔을 움직이며 들이댔다. “힘이 있어서요, 힘이.” 하고 대답한다. “옳습니다. 힘이 들어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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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 목사(전 본지 주필)
2023.02.0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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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신 목사는 1950년 청원군 가마교회 집사로 충실히 봉사했다. 1950년 6‧25사변으로 그의 고향 마을도 북한 인민군에게 점령되었다. 이때 이용신 집사가 가마교회에서 주일 오전 오후와 수요일 저녁 예배에 설교를 담당하고 있었다. 인민군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후퇴하면서 이미 투옥하여 잔인한 고문을 가한 이용신 집사와 지역의 유지들을 한밤중에 결박하여 청주 무심천으로 끌고 가서 장총으로 집단 학살하여 큰 구덩이에 묻었다. 이용신 집사도 학살의 현장에서 구덩이에 함께 묻혔는데 총탄을 맞지 않아 목숨이 붙어있었다. 잠시 천국에 다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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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 목사(전 본지 주필)
2023.01.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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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근 목사는 자주 틈을 내어 이탈교회들을 방문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말하고 함께 기도하고 계속 설득했다. 그 결과 총회적으로 1965년 제1차 합동 시 129개 교회가 예성에서 돌아왔는데 그 중 경북지방회의 14개 교회가 합동에 가담한 것은 박목사의 노력의 결과였다.그가 8번이나 지방회장으로 봉사하므로 총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의 이름이 더 크게 알려진 것은 교단 창립 60주년인 1967년을 앞두고 배가운동에 대한 가사 공모가 있었다. 박 목사는 교회 부흥은 배가운동이라고 생각을 했기에 응모해 당선되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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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하목사
2022.12.2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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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를 졸업했으나 대구에는 박석근 목사가 부임할 교회가 없었다. 그는 성결교회가 장로교회보다 약세임을 깨닫고 성결교회 확장에 관심 가졌다. 당시 경상남북도가 영남지방회였는데, 1947년 안창기 목사가 지방회장이 되면서 지방성경학교를 개설해 박 목사는 성경학교의 실무자로 일했다.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그는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에 불타 감격스러운 날로 보냈다. 그는 3년 전 조국이 갑자기 광복될 때 놀랐었다. 악랄한 일본 총독정치로 꿈도 꾸지 못할 광복을 하나님이 연합군을 통해 선물로 주신 것을 깨닫고 더욱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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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하목사
2022.12.0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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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교회마다 신자의 수가 적었고, 또 신자들이 가난해서 십일조는 엄두도 못해 푼돈 같은 주일헌금, 또 가끔 드리는 감사헌금 등으로 유지하기에 교회의 재정은 늘 부족했다. 어느 해 그가 교회의 회계집사로 임명되어 교회의 재정상태를 살펴보니 한심했다.당시 교역자의 사례금은 동양선교회에서 매월 일정액을 지원했으니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 금액은 자기 월급보다 적은데, 목사님 가족이 많아 생활의 어려움을 안 그는 선배 집사들을 설득하여 일정액을 생활비 보조로 교회에서 부담하여 걱정 없이 목회에만 힘쓰도록 했다. 또 그는 교회의 신자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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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하 목사(전 본지 편집위원장)
2022.11.2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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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근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직후인 1913년 8월 2일에 경북 의성군 비안면 동부동에서 마을의 유지 박홍석 씨와 서옥연 씨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자라면서 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몸이 호리호리한 유교가 선호하는 군자(君子)형으로 온 가문이 좋아했다.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경상북도는 신라의 불교 본산지인 경주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불교의 영향이 막강하여 우리나라 8도 중 불교 사찰이 가장 많은 곳이다.그러나 불교국가 고려의 멸망으로 조선은 유교의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안동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갔다.당시 경상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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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하 목사(전 본지 편집위원장)
2022.11.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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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8월 21일부터 공판이 시작되었다. 구치소 남쪽으로 약 20km의 거리에 재판소가 있다.동경에서 13인이 쇠고랑을 차고 용수를 쓰고 목탄으로 움직이는 목탄호송차에 올랐다.13인의 목사가 범법했다는 법률의 해당 조항은 ‘개정 치안 유지법 제7조’로 국체를 부정하는 사상과 신궁과 황실의 존엄 모독을 목적으로 결사한 자와 그 역원에게 4년 이상의 형으로 되어있다.12월 27일에 판결의 날, 재판정에 성경주석학자 요네다(米田豊) 목사를 비롯하여 13인이 1열로 섰다. 선고내용은 일부는 실형을 받기도 하고, 일부는 집행유예를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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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 목사(전 본지 주필)
2022.09.1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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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5월 늦은 봄, 아침 햇살을 받으며 유치장 생활 12개월 만에 동경 구치소로 이송되었다.쇠고랑을 찬 채 형사의 경계를 받으며 다가다(高田) 전철 정류장에서 승차했다. 정류장 서편 2분간 거리에 그가 섬기는 교회당과 그의 집이 있다. 숲사이로 슬금슬금 교회와 집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그의 마음은 착잡하고 감개무량했다.1년 만에 보이는 교회당 지붕으로 계속 눈이 쏠린다. 이미 교회는 해산되고 신도는 뿔뿔이 흩어져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국에서 당하는 민족적인 공허감과 양 떼를 잃은 목자의 복받치는 설움이 뒤엉킨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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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 목사(전 본지 주필)
2022.08.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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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목사가 따라간 곳은 다다미 백여 장 깔만한 넓은 유도 훈련장이었다. 검사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검찰은 김 목사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관찰해가면서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다.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운 후 검사가 김 목사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천황폐하가 높으냐? 예수가 높으냐? 천황폐하의 엄명이다. 천황폐하에게 참배하라.”김 목사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천황은 인간이다. 우리 기독교는 오직 예수에게 예배드린다. 천황은 인간이기 때문에 참배 대상이 될 수 없다.” 김 목사가 단호히 거절하는 순간, 눈에서 번쩍 섬광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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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 목사(전 본지 주필)
2022.08.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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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6월 26일 5시 30분쯤, 낯선 사복형사들이 닥쳐왔다. 영장도 보이지 않고 이름을 확인하더니 경찰서로 가자는 것이다. 전날 수요일 기도회에 20여 명의 신도가 모여서 예배를 인도했었다. 신도들이 헤어지면서 왠지 불안한 긴장감이 감돌았다.김 목사 역시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 채 자고 일어난 이른 아침이다. 옷을 바꿔입을 시간도 없이, 가족들과 작별할 여유조차없이 연행되어 경찰서 특고실(特高室)에 갇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형사 6~7명이 트럭으로 목사 서가에서 서적 천여 권과 설교 노트와 일기장 11책을 압수해 갔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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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 목사(본지 전 주필)
2022.08.1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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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목사는 1940년 5월15일 전북 이리성결교회에서 동경 다가다(高田) 교회로 전임했다. 그는 김태일(金泰日)로 불리었는데 김광남으로 개명했다.당시 34세의 젊은 목사로서 청운의 꿈을 품고 동양의 학술 중심지인 동경교회에 부임했다.김 목사는 세계 제2차대전 막바지 그를 심문하는 일본 경시청 검사가 천황폐하에게 참배하라고 강요하자 “천황은 인간이다. 기독교는 예수에게만 예배드린다.”라고 단호히 거절하여 수난을 당했다. 1942년 12월 8일에, 일본이 세계제2차대전을 일으켰다. 일본군부는 식민지국 젊은이(특히 한국)를 강제로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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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 목사(전 본지 주필)
2022.08.1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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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목사가 사명을 지니고 뉴욕에 도착한 때는 12월 초순이었다. 뉴욕의 성결교회는 이미 시작되었다.뉴욕에 사는 성결교회 신자들의 간청에 따라 브라질에서 목회하던 김석규 목사가 OMS의 초청으로 미국에 와서 그해 4월에 18명의 성도와 함께 예배를 드린 것이다.신자들이 계속 늘자 그해 8월 8일 뉴욕한빛교회라는 이름으로 정식 창립예배를 드렸으나 12월 17일 김석규 목사는 샌프란시스코의 상항성결교회의 청빙을 받아 떠났고, 12월 19일 주일에 정승일 목사가 부임하여 평소 그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그의 명 설교에 은혜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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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하 목사(본지 전 편집위원장)
2022.06.0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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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목사가 부산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충남 공주읍교회의 장로로부터 자기 교회의 목사로 모시겠다는 청빙을 받는다.마침 공석인 자기 교회의 담임목사를 모시려고 왔는데, 잘 아는 목사의 추천으로 정승일 목사를 청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안수를 받자마자 40년 간의 목회 대장정이 시작되게 되었다. 이제 그의 한국에서 목회한 4개 교회의 사역 중 중요한 사건만을 간략하게 소개한다.충남 공주교회는 그가 1951년 부산총회에서 안수를 받고서 처음 시무한 교회였다. 그는 첫 목회자의 감격으로 부임하여 기도에 힘쓰면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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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하 목사(본지 전 편집위원장)
2022.05.2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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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전도사는 목포교회에서 사역을 하다 설교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처음으로 느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성경해석을 하고 잘 설명하는 강해식 설교를 했으나 주일 저녁예배나 수요기도회에 나오는 신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이성봉 목사의 설교와 달라 재미가 없는 설교라는 것이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부흥회를 마치고 토요일 저녁에 오시는 이성봉 목사님께 가서 상의했다. 그 결과 그는 교회를 사직하고 다른 신학교에 가서 학사 편입을 해서 설교학과 신학을 더 배우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그래서 이성봉 목사도 새로운 결단을 해야 했다. 매주마다 초교파
일화이야기
류재하 목사(본지 전 편집위원장)
2022.05.1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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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의 전반기는 역사적으로 세계의 전쟁 시기였다. 서양은 독일의 나치군이 1938년 인근 폴란드에 대한 무단 침략으로 전 유럽국가들과의 전쟁으로 비화되었다.처음 5년간 나치에 의해 영국을 제외한 유럽국가들이 거의 점령당했다. 이것을 세계 제2차 전쟁이라고 부른다.동양에서는 일본이 아시아 석권을 목표로 1937년 중국 난징에 침략전쟁을 일으켜 계속 동남아로 진격하다 석유 문제로 미국과의 갈등이 생겼다. 이에 일본은 내각을 군부체제로 전환, 1941년 12월 7일에 미국령 하와이 진주만 해군기지 폭격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그
일화이야기
류재학 목사(전 본지 편집위원장)
2022.05.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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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목사는 일제가 강점하던 1922년 12월 21일에 평안북도 용천군 용암포 읍에서 정의근 씨와 이광윤 씨를 부모로 6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훤하게 잘생긴 용모를 지녔으며, 말과 행동도 의젓하여 ‘꼬마 어른’으로 불렸다.용천군은 평안북도 압록강 하구의 동쪽 언덕을 차지한 군으로 예부터 농업과 수산업의 발달로 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난 곳이다.중국과 압록강을 사이로 둔 접경지역으로 북부는 신의주에 잇대어 있어 주민들은 학업, 직장, 장사 등으로 신의주를 이웃집처럼 드나들었다.이곳은 예부터
일화이야기
류재하 목사(전 본지 편집위원장)
2022.04.20 14:32